책 소개
삶은 행복이 아니라 무수한 슬픔을 견뎌내는 일
― 권애숙 시집 『당신 너머, 모르는 이름들』
삶은 살 만하다고, 살아 있음은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고, 얼마나 편한 세상이냐고, 티비 속에서 신문 속에서 전단지 속에서 무수한 광고 카피는 그렇게 우리를 유혹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실현되지 못할 희망사항일 뿐, 그야말로 가상현실일 뿐, 실재의 세상은 전혀 다르다. 현실의 삶은 오히려 고달프고, 살아 있음은 무수한 슬픔과 불행을 견디는 일에 가깝다.
권애숙의 신작 시집 『당신 너머, 모르는 이름들』은 그런 실재의 삶을 보여준다. 사는 일이란 게 “바닥이 되는 일”이고 “걸음마다 이마를 짓찧어 피멍이 되는 일”(「사는 방식」)이고, 삶의 이력이란 게 “핏물이 발라붙은 등가죽”을 쩌억 뜯어내는 일이고, “금 간 평생”(「벽의 이력」)을 쩌억 뜯어내는 일이라 하고, 안타깝지만 “희망은 섣불리 리셋되지 않”(「꽃 지는 밤」)는다 한다. 그게 실재의 삶이라 한다. 그러면서 시인은 고립되고 소외된 개인들이 어떻게 이 삶의 고단함을 견뎌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시집 해설을 쓴 황정산 평론가는 “사이에 대한 사색과 거리의 미학”이라고 규정하며 이렇게 얘기한다. 몇 개의 문장만 인용한다.
“나의 욕망이 강조될수록 타인은 내게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내게 어떤 욕망도 불러일으키지 못한 타인은 내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타자가 된다. 그들의 삶은 내 삶으로부터 추방된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누군가로부터 추방된 존재가 되어 결국 고독한 개인으로만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 권애숙 시인의 시들은 이런 욕망으로 하나 되는 시대에 한 개인이 또 다른 존재를 만나는 방식에 대한 탐구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 그의 시들은 ‘사이’에 대한 성찰이라 할 수 있다.”
“권애숙 시인의 시들은 아름답거나 착하거나 올바르지 않다. 그래서 좋은 시다. 이 모든 가치에 의존하지 않고 있지만 바로 그 이유로 이 모든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이 아름답고 올바르고 좋은 것인지 그의 시들은 우리를 이 의문 속에 던져준다. 그래서 편안하게 그의 시를 읽거나 그의 시를 읽고 위로 받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그의 시들을 읽으면 시 한 편 한 편이 우리에게 잊혀진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그것과 관계된 나의 생각 속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것은 그의 시가 존재와 존재 사이의 관계와 그 거리들을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시인과 시적 화자의 거리만큼이나 시인과 독자와의 거리를 생각하게 하고, 그의 시들이 불러일으킨 시적 감흥은 그와 다른 방식으로 느껴지는 나의 감흥이 되어 돌아온다.”
“시와 시인, 나와 타인과의 거리를 인식하고 그것들과의 사이의 미학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만들어진 경계를 허물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경계를 지어 나를 ‘우리’라는 집단에 가두고 나와 너를 구별해왔다. 그런 구별 안에서는 상투적 세상 인식과 편 가르기만 존재할 뿐 세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는 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은 이 시집의 시들을 쓰며 이 경계를 넘고자 한다. 이 경계를 넘어서고 있는 아름다운 발자국이 바로 이 시집에 한 자 한 자 뚜렷하게 찍혀 있다.”
한편 최서림 시인은 이번 권애숙 시집을 두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시인 권애숙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가면의 제국이지만, 정작 시인 자신은 가면을 쓰지 않는다. 그의 시는 겸손하면서도 도도하다. 시의 결은 청사포 돌미역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세다. 시의 뼈대는 유유히 날아다니다가 먹이를 보는 순간, 활강해서 낚아채는 부산갈매기 같다. 가을비 내리는 날 그의 시를 곰곰이 씹어 먹으면 동래파전에다 산성막걸리 생각이 난다. 화장도 하지 않는 그의 시는 후줄근한 영혼에 새잎 돋게 하는 복사골의 텃밭이다. 겨울에도 새파랗게 살아 견뎌내는 봄동이다.”
좋은 시는 세상과 불화하는 방식으로 세상과 화해하고 독자와 불화하는 방식으로 독자와 화해한다. 이번 권애숙 시집이 바로 그렇다. 얼핏 불친절하고 불편한 권애숙의 시집을 더듬어 가다 보면 내가 어떻게 세계와 불화하면서 화해해야 하는지, 어떻게 타자와 불화하면서 화해해야 하는지 문득 깨닫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권애숙 시인은 경북 선산 아름다운 강기슭에서 태어나 자란 뒤, 바다의 도시 부산에 살고 있다. 신문과 시 전문 잡지를 통해 문단에 발을 들이밀었으며 뒤늦게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시집『차가운 등뼈 하나로』『카툰세상』『맞장 뜨는 오후』『흔적 극장』을 냈고 시, 시조, 동시, 산문 등 다양한 글쓰기를 모색하는 중이다. 부산 작가회의, 시인협회 회원이다.
목 차
시인의 말
1부
부추꽃 피던 날
수런거리는 풀밭
쓸개의 무게
사는 방식
벽의 이력
둥긂에 대한 애도
하얀 기린
꽃관
겨울로 가는 미래
갑골문 편지
명화의 내력
도라지꽃
시가 시인에게
회고록
이월 초하루
2부
믿는 구석
온몸이 접힌 너를 위해
시인의 집
꽃 지는 밤
복사골
쑥전 동봉
가을학기
소쩍새 우는 밤
은유엔 가시가 많다
귀향 365번지
새들이 당도했다
11월의 계곡
사랑이란 거처
초점이 생기는 날
찔레꽃 전설
3부
어쩌다,
국물이 끓는 동안
후기
꽃담
가면의 제국
그 남자가 사는 행성
미친 완료
지직거리는 시절 1
지직거리는 시절 2
꽃의 생명선
사라진 페이지
경계를 넘은 것들
밥의 나라
간판에 불이 들어올 때
편먹기
4부
예고편
물 위에 쓰다
바람의 이름으로
유쾌한 골짜기
그믐
맨발로 이슬이
여자의 언덕
기름집 일가
텅 빈 완성
완벽한 양념
산 너머 남촌에는
미역국을 끓이자
오후 4시 30분
명당
첫사랑
해설 _ 사이에 대한 사색과 거리의 미학 _ 황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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