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그림자 서로 밟지 않을 만큼
소슬바람에 숨소리 전해질 만큼
어쩌다 눈빛만 보아도 뜨거움 느낄 만큼
눈가의 물빛만 보아도
가슴 찡하게 울려올 만큼
손잡지 않아도 서로 온기를 느끼는
사이
부둥켜안지 않아도 언제나 느끼는
내 마음 항상 당신 뜻대로 바꿀 수 있는
눈으로 보고 마음에 담는, 그 간격
나무와 나무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전문
이 작품은 ‘간격’이라는 언어를 통해 시인으로서의 자의식을 토로하고 있다. 나무와 나무 사이,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반드시 간격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들어앉은 시간을 통해 스스로 질문하고 특별한 사유를 만들어낸다. 사이에 부는 바람에도 사랑과 용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당신과 나는 꽃처럼 어디선가 만난다. “그림자를 서로 밟지 않을 만큼”의 간격은 존경과 사랑의 가장 적당한 간격이다. “눈가의 물빛만 보아도” 상대를 이해하는 애정 어린 응시와 진솔한 마음이 그려내는 사랑의 온기에 귀를 기울인다. “손잡지 않아도 서로 온기를 느끼는 사이”를 나무로 형상화하며 진솔한 시간을 깊이 있게 빚어낸다. “나무와 나무의 사이”는 우리의 세계를 희망으로 바꾸어내는 사랑이라는 풍요로운 자산이 들어 있다.
용서를 청할 빼곡히 적힌 이름이 든 가방
수녀원 대문간에 두고 왔다
용서할 내 마음을 먼저 두고 왔어야만 했다
통증은 오래 가시지 않았다
-「수도원에 두고 온 가방」부분
이소애 시인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코끝을 맵게 고문하는 일이다. 손끝도 아리게 한다. 어둠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손끝에서 쓰인 시들이 코스모스의 하늘처럼 푸르다. 묵묵히 자신의 ‘존재’를 받아들이며 그것을 시의 영토로 데리고 간다. 겸허한 의지가 노을빛처럼 깊은 색을 머금고 있다. 시인의 시적 여행은 아주 긴 기차를 타고 계속될 것이다. 그리운 것들을 데리고 달의 표면에 음악처럼 가닿을 것이다.
시인의 말
반백년,
갖은 풍상 함께 겪어온 당신은 내 자서전입니다.
우리들의 사랑,
세상 그 어떤 잣대로 가늠할 수 있을까요?
이제 슬슬 혼자 떠나는 여행을 연습해 보렵니다.
마지막이라는 말 아껴 쓰자는 당신, 동의합니다.
얼마나 추워지면 꽃잎이 떨어질까요?
하늘과 땅의 경계가 무너질까요?
때때로 섭섭함 짙어가고 혼자라는 외로움 스밉니다.
반백년, 위로의 말로 다독여준 당신이 고맙습니다.
내 곁에 향기로 맴도는 그대 있어
오늘 행복합니다.
2017년 늦가을
이소애
작가 소개
저 : 이소애
전북 정읍에서 태어나 1960년 [황토] 동인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우석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 전북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과 수료. 시집으로 『침묵으로 하는 말』 『쪽빛 징검다리』 『시간에 물들다』 『색의 파장』, 수상집 『보랏빛연가』가 있다. [허난설헌문학상] 본상, [황금찬시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문학상], [중산시문학상], [전북예총하림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전주문인협회 회장, 전북문학관 아카데미 강사.
목 차
시인의 말
제1부
양팔저울 13 무창포 해당화 14 무량사 꽃살문 16 반백년 17 늦바람 18 나무와 나무 사이 20 각방 21 회고 22 빛의 부스러기들 23 참회 24 풍금 소리가 들리는 바다 26
제2부
괴나리봇짐 29 주인을 기다리는 방 30 흔들다리 31 좌광우도 32 눈물도 호강 34 휘뚜루마뚜루 35 딴뚝식당 게국지 36 붕어섬 38 까먹다 39 우체통 40
제3부
날 보러 오려거든 43 겸손 44 삼례역 45 겨울 연 46 목련화 필 무렵 48 대추나무 집 여자 49 맹꽁이 50 안면초등학교 52 허리 굽은 소나무 53 꾀꼬리 둥지 틀다 54
제4부
까치밥 57 수도원에 두고 온 가방 58 후회 60 가출 62 고백 64 징검다리 65 신비를 체험하다 66 천년을 위하여 68 침묵으로 오시는 성모 마리아 70 응보(應報) 72
제5부
꽃버선 75 전주천 빨래터 76 그 집에 가고 싶다 78 완산동 바람골목 80 봄은 한 뼘 창으로 온다 82 꽃심의 터를 걸어보렴 84 인봉리 소낙비 86 생각을 길어 올리다 87 봄소식 88 탱자나무 울타리 90 몸빼바지 92 처방전 94 손수건 96
해설 | 손잡지 않아도 서로 온기를 느끼는 사이 97
최서진(시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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