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환유의 관습적 특성, 시인과 독자의 암묵적 동의!
『환유』의 1부에서는 환유라는 개념을 알기 쉽게 서술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정곡을 찌르는 예시를 통해 환유가 발생하는 기본 구조를 명쾌하게 해명한다.
환유를 낳는 조건은 연상이 가진 일종의 자동성(自動性)이다. 이런 자동성이 언중에 익숙해져서 축약될 수 있을 때 어휘 차원의 환유가 생성된다. 자동화(自動化)된 인접성이 곧 환유의 방식이므로 어휘 차원의 환유는 일종의 괄호 치기의 결과로 생겨난다. 말을 하는 사람(발화자)과 듣는 사람(청자나 독자)이 서로 아는 영역을 생략했을 때에 환유가 생겨나는 셈이다. 이 관습적인 괄호의 자리가 환유가 생겨나는 자리다.(본문 26페이지)
이 책에 따르면, 환유에는 관습적 특성이 있다. 관습상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발생하고, 그것이 생략될 때 환유는 성립하게 된다. 환유의 개념적 이해를 돕기 위해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제시한다. ‘톨스토이’로 ‘톨스토이가 쓴 책’을 나타내거나, ‘감투’로 ‘벼슬’을 나타내거나, ‘자동차’로 ‘운전자’를 나타내는 일 등은 환유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특히 다음과 같은 사례는 환유를 거의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끓고 있는 주전자 → 주전자(속의 물)
청와대의 발표가 있었다. → 청와대(의 정부 대변인)
괄호 속의 내용은 화자와 청자 모두가 관습적으로 알고 있다고 동의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생략되었다. 이렇게 괄호 속에 생략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때 비로소 환유는 성립하는 것이다.
환유가 발생시키는 시적 의미와 가치!
이 책의 1부가 환유의 개념을 살펴보고 새로운 개념적 가능성을 모색한다면, 2부는 현대시에 활용되고 있는 환유의 다양한 양상과 환유가 발생시키는 시적 의미와 가치를 소개한다. 김춘수 시인의 시 ?부두에서?를 제재로 삼아 환유를 설명하고 그 표현방식의 시적 효과를 분석하는 대목을 보자.
바다에 몸을 굽힌 사나이들,
하루의 노동을 끝낸
저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긴
깨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은
온전한 바다,
물개들과 상어떼가 놓친
그 바다,
- 김춘수, 「부두(埠頭)에서」 전문
이 시는 바다가 신성한 노동의 장소임을 암시해준다. “바다에 몸을 굽힌” 것은 바다에 굴복해서가 아니다. 사나이들은 어부들이며, 따라서 저들은 그물질을 막 끝낸 참이다. 3행에서 바다가 “사나이들의 억센 팔에” 안겨 있다고 한 것은 사나이들이 잡은 생선의 신선함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다는 생선을 환유한다. 바다 곧 생선은 “온전한 바다”여서 사나이의 팔에 아기처럼 평온히 안겨 있다. “물개들”과 “상어떼”는 노동하는 주체가 아니다. “물개들과 상어떼가 놓친 바다”라는 말은 물개들과 상어떼가 놓친 고기일 테지만, 나아가 바다가 물개들의 장난(분탕질)과 상어떼의 횡포(폭력성)에 얼룩지지 않았다는 의미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시에서 관찰 대상은 “사나이들”→“억센 팔”→“바다”(혹은 생선)로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시선이나 생각이 상반된 의미자질로 넘어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셈이다.(본문 37∼38페이지)
환유의 표현 전략이 한 편의 시를 얼마나 풍요롭게 해주는지를 이처럼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시인이 한 편의 시에 마련해놓은 환유의 전략을 간파하는 순간, 독자에게 시는 새로운 표정으로 다가온다. 문학 이론을 안다는 건 그런 의미일 것이다. 복잡한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게 아니라, 문학 작품을 보다 풍요하고 다채롭게 감상할 수 있는 것. 그런 의미에서 『환유』는 문학 작품에 대한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선사하는 한편,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의 숨겨진 의미와 작동 맥락에 눈뜨게 해줄 것이다.
한 권의 책이 우리의 얼어붙은 영혼과 감수성을 깨는 도끼라고 한다면, 『환유』는 잘 벼린 날을 앞세운 도끼가 되기에 충분하다. 이 책을 통해 ‘환유’의 의미와 정체를 제대로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움직이는 또 하나의 섭리와 이치를 깨우치게 될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권혁웅
1967년 충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6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1997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시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황금나무 아래서』,『마징가 계보학』,『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소문들』이 있으며, 평론집 『미래파』, 이론서 『시론』, 산문집 『두근두근』등이 있으며, 전 세계의 신화를 정신분석의 논리로 읽은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신화에 숨은 열여섯가지 사랑의 코드』, 『몬스터 멜랑콜리아』, 시선집 『당신을 읽는 시간』『애인은 토막 난 순대처럼 운다』등을 펴냈다.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이다. 2012년 미당문학상을 수상했다.
목 차
쓰기보다는 말하기, 읽기보다는 듣기
1. 환유란 무엇인가?
환유 이해의 어려움
비유의 삼각형과 환유
환유는 어떻게 생겨나는가?
비유의 오각형(피라미드)과 환유
2. 현대시와 환유
환유적인 시의 특징
환유와 제유의 시사(詩史)
현대시와 환유
환유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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