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논어』를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동양 고전 해설서
공자와 그의 제자들 언행에 숨어 있는 생활의 지혜와 처세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과 가르침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차주환 선생이 번역한 기존의 『새로 풀이한 논어』의 개정판으로 요즘 독자들에 맞게 번역 문구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다듬고, 판형과 글자 크기 등을 달리해서 가독성을 높였다. 아울러 한자 원문과 해석에 대한 풀이를 별도로 달아서 논어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특히 해설에 서로 연관이 있는 각각의 편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공야장」 편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道)가 행해지지 않아서 떼를 타고 바다로 떠나가게 되면 나를 따라올 사람은 유(由)일 게다.’ 자로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由)는 용맹한 것을 좋아하기는 나보다 낫지만 사리(事理)를 분간할 줄 모른다.’” 이 부분의 뜻과 해설은 「자한」 편의 “선생님께서는 동방의 여러 종족 사이에 사시기를 원하였다. 어떤 사람이, ‘누추할 터인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한 게 있겠느냐?’”는 부분과 일부 연관이 있다. 그래서 「공야장」 편의 말을 해설하면서 동시에 「자한」 편의 연관 있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논어』 전체에 담긴 메시지를 좀 더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논어』는 어려우리라는 편견과 달리 생각보다 이해하기 쉬운 명구들로 되어 있다. 또한 공자와 그의 문인들의 언행은 다분히 철학적이면서도 또한 자신의 수양과 처세에 관해 깊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논어』의 이러한 면은 여러 장에서 잘 드러난다. 『논어』 「학이」 편을 보면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할 게 아니라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어떻게 해서든 남들이 자기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현대인들에게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위정」 편에 나오는 “군자는 보편적(普遍的)이고 편당적(偏黨的)이 아니다. 소인(小人)은 편당적이고 보편적이 아니다”라는 말도 오늘날 서로의 목소리만 내세우고 자기 편만 챙기는 세태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명구다. 그 밖에도 “자기의 마음을 살펴보고 흠잡을 데가 없으면 대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안연」)”, “선한 사람을 보고는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악한 사람을 보고는 안으로 자기를 돌아볼 것이다(「이인」)”처럼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아다보고, 앞으로 추구해야 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깊은 지혜와 성찰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늘날 동양 고전 중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논어』가 빠질 수가 없다. 특히나 이번 개정판은 학문적인 해설로 묵직한 느낌을 주는 기존의
『논어』와 달리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해설들과 편안한 번역이 돋보인다.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고
마흔이 되어서는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나이가 마흔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으면 그야말로 마지막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유교 철학자였던 정자(程子)는 『논어』를 가리켜 “『논어』를 읽는데, 다 읽고 나서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고, 다 읽고 나서 그 가운데 한두 구(句)를 얻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다 읽고 나서 그것을 좋아할 줄 알게 되는 사람이 있고, 다 읽고 나서 그냥 손이 덩실거리고 발이 들먹거리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공자와 그의 제자들 언행이 기록되어 있는 『논어』가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음을 알 수 있다. 또 정자는 『논어』를 가리켜 “요새 사람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만약에 『논어』를 읽어서, 읽지 않았을 때에 그러그러한 사람이 다 읽고 나서도 또 단지 그러그러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하며 『논어』에 담긴 힘을 극찬한 바 있다.
사실 『논어』는 공자와 그의 문인들의 언행에서 단편적인 기록들을 정리한 것으로, 인간적인 문제만을 다룬 글들이어서 읽는 데 큰 부담이 없다. 따라서 유난히 바쁘고 성급한 현대인에게는 아주 적합한 읽을거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논어』는 모두 평이하고 당연하면서도 무한한 힘을 지니고 깊이 파고드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어려운 철학 용어가 등장하는 대신 계속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말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춘추 전국 시대를 살아갔던 현인들이 고민하고 답을 찾던 실생활의 문제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필요한 처세서로서의 면모도 지닌다. 이처럼 철학적인 깊이와 처세적인 실용적인 측면 모두를 갖춘 『논어』는 읽는 내내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 명저다.
▣ 작가 소개
저 : 공자
孔子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인 B.C.551년,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방인 노(魯)나라의 작은 마을인 추읍( 邑)에서 태어났다. 이 때는 인도의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시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은(殷)나라 왕족의 몰락한 후예의 집안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급무사였던 숙량흘(叔梁紇)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안징재(顔徵在)였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고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당시 공자의 집안은 몰락하여 겨우 벼슬을 할 수 있는 계급인 사(士)에 속해 있었다. 사계급은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공자 나이 24살 되던 기원전 528년에 공자의 어머니는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방(防) 땅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묻고 삼년상을 지낸 뒤 또 2, 3년 지나서야 다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한 주(周)나라를 동경하였고, 그 반대로 당시의 권세 있는 대부(大夫)들이 제후(諸侯)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농단하던 사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게 된 공자가 정치에 관여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자가 살던 당시 춘추시대에는 국가간이나 나라안이나 간에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명목의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仁)의 실천,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했던 공자로서는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서도 책이나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자기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설파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직접 벼슬을 맡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벽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두터웠고, 많은 좌절과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인 도덕정치철학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계승되어 한(漢)나라에서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이래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교육자와 뛰어난 정치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낸 공자도 인간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 리(鯉)와 가장 아끼던 제자 안연(顔淵)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며, 여러 나라를 떠도는 가운데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테러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년에는 이런 모든 것을 잊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 『춘추(春秋)』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에 재미를 붙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공부하는 한편, 고향의 이상이 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기원전 479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가장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사상의 중심을 인(仁)에 두었다. 최고의 덕을 인으로 본 공자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대표작품인 『논어』는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책의 제목이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역자 : 차주환
강원도 영월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중문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미국 하버드대학교, 중국 중앙연구원에서 연구. 서울대학교 교수 역임. 옮긴 책으로 『중국 문화사 총론』, 『동양의 지혜』, 『사십자술(四十自述)』, 『시화와 만록』 외 다수가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논어서설(論語序說)
1. 학이(學而)
2. 위정(爲政)
3. 팔일(八佾)
4. 이인(里仁)
5. 공야장(公冶長)
6. 옹야(雍也)
7. 술이(述而)
8. 태백(泰伯)
9. 자한(子罕)
10. 향당(鄕黨)
11. 선진(先進)
12. 안연(顔淵)
13. 자로(子路)
14. 헌문(憲問)
15. 위영공(衛靈公)
16. 계씨(季氏)
17. 양화(陽貨)
18. 미자(微子)
19. 자장(子張)
20. 요왈(堯曰)
『논어』를 처음 읽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한 동양 고전 해설서
공자와 그의 제자들 언행에 숨어 있는 생활의 지혜와 처세
공자와 제자들의 문답과 가르침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차주환 선생이 번역한 기존의 『새로 풀이한 논어』의 개정판으로 요즘 독자들에 맞게 번역 문구를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다듬고, 판형과 글자 크기 등을 달리해서 가독성을 높였다. 아울러 한자 원문과 해석에 대한 풀이를 별도로 달아서 논어에 담겨 있는 깊은 뜻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배치했다. 특히 해설에 서로 연관이 있는 각각의 편들을 찾아볼 수 있도록 배치한 것이 돋보인다. 예를 들어, 「공야장」 편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道)가 행해지지 않아서 떼를 타고 바다로 떠나가게 되면 나를 따라올 사람은 유(由)일 게다.’ 자로가 이 말씀을 듣고 기뻐하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由)는 용맹한 것을 좋아하기는 나보다 낫지만 사리(事理)를 분간할 줄 모른다.’” 이 부분의 뜻과 해설은 「자한」 편의 “선생님께서는 동방의 여러 종족 사이에 사시기를 원하였다. 어떤 사람이, ‘누추할 터인데 어떻게 하시렵니까?’ 하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가 사는데 무슨 누추한 게 있겠느냐?’”는 부분과 일부 연관이 있다. 그래서 「공야장」 편의 말을 해설하면서 동시에 「자한」 편의 연관 있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논어』 전체에 담긴 메시지를 좀 더 유기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논어』는 어려우리라는 편견과 달리 생각보다 이해하기 쉬운 명구들로 되어 있다. 또한 공자와 그의 문인들의 언행은 다분히 철학적이면서도 또한 자신의 수양과 처세에 관해 깊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논어』의 이러한 면은 여러 장에서 잘 드러난다. 『논어』 「학이」 편을 보면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할 게 아니라 남을 알아보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어떻게 해서든 남들이 자기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현대인들에게 무척이나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위정」 편에 나오는 “군자는 보편적(普遍的)이고 편당적(偏黨的)이 아니다. 소인(小人)은 편당적이고 보편적이 아니다”라는 말도 오늘날 서로의 목소리만 내세우고 자기 편만 챙기는 세태에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명구다. 그 밖에도 “자기의 마음을 살펴보고 흠잡을 데가 없으면 대체 무엇을 근심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겠느냐?(「안연」)”, “선한 사람을 보고는 그와 같아지기를 생각하고, 악한 사람을 보고는 안으로 자기를 돌아볼 것이다(「이인」)”처럼 지금까지의 자신을 돌아다보고, 앞으로 추구해야 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깊은 지혜와 성찰들을 만날 수 있다.
오늘날 동양 고전 중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을 한 가지만 꼽는다면 『논어』가 빠질 수가 없다. 특히나 이번 개정판은 학문적인 해설로 묵직한 느낌을 주는 기존의
『논어』와 달리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해설들과 편안한 번역이 돋보인다.
열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고, 서른 살에 학문의 기초를 확립하고
마흔이 되어서는 판단에 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나이가 마흔이 되어서도 미움을 받으면 그야말로 마지막이다
중국 송나라 때의 유교 철학자였던 정자(程子)는 『논어』를 가리켜 “『논어』를 읽는데, 다 읽고 나서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이 있고, 다 읽고 나서 그 가운데 한두 구(句)를 얻고 기뻐하는 사람이 있고, 다 읽고 나서 그것을 좋아할 줄 알게 되는 사람이 있고, 다 읽고 나서 그냥 손이 덩실거리고 발이 들먹거리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만큼 공자와 그의 제자들 언행이 기록되어 있는 『논어』가 오랫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음을 알 수 있다. 또 정자는 『논어』를 가리켜 “요새 사람들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만약에 『논어』를 읽어서, 읽지 않았을 때에 그러그러한 사람이 다 읽고 나서도 또 단지 그러그러한 사람이라면 그것은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하며 『논어』에 담긴 힘을 극찬한 바 있다.
사실 『논어』는 공자와 그의 문인들의 언행에서 단편적인 기록들을 정리한 것으로, 인간적인 문제만을 다룬 글들이어서 읽는 데 큰 부담이 없다. 따라서 유난히 바쁘고 성급한 현대인에게는 아주 적합한 읽을거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논어』는 모두 평이하고 당연하면서도 무한한 힘을 지니고 깊이 파고드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어려운 철학 용어가 등장하는 대신 계속 되새김질하게 만드는 말들이 많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춘추 전국 시대를 살아갔던 현인들이 고민하고 답을 찾던 실생활의 문제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어 오늘날에도 우리들에게 필요한 처세서로서의 면모도 지닌다. 이처럼 철학적인 깊이와 처세적인 실용적인 측면 모두를 갖춘 『논어』는 읽는 내내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을 지닌 명저다.
▣ 작가 소개
저 : 공자
孔子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인 B.C.551년,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방인 노(魯)나라의 작은 마을인 추읍( 邑)에서 태어났다. 이 때는 인도의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시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은(殷)나라 왕족의 몰락한 후예의 집안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급무사였던 숙량흘(叔梁紇)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안징재(顔徵在)였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고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당시 공자의 집안은 몰락하여 겨우 벼슬을 할 수 있는 계급인 사(士)에 속해 있었다. 사계급은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공자 나이 24살 되던 기원전 528년에 공자의 어머니는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방(防) 땅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묻고 삼년상을 지낸 뒤 또 2, 3년 지나서야 다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한 주(周)나라를 동경하였고, 그 반대로 당시의 권세 있는 대부(大夫)들이 제후(諸侯)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농단하던 사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게 된 공자가 정치에 관여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자가 살던 당시 춘추시대에는 국가간이나 나라안이나 간에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명목의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仁)의 실천,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했던 공자로서는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서도 책이나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자기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설파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직접 벼슬을 맡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벽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두터웠고, 많은 좌절과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인 도덕정치철학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계승되어 한(漢)나라에서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이래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교육자와 뛰어난 정치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낸 공자도 인간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 리(鯉)와 가장 아끼던 제자 안연(顔淵)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며, 여러 나라를 떠도는 가운데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테러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년에는 이런 모든 것을 잊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 『춘추(春秋)』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에 재미를 붙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공부하는 한편, 고향의 이상이 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기원전 479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가장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사상의 중심을 인(仁)에 두었다. 최고의 덕을 인으로 본 공자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대표작품인 『논어』는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책의 제목이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역자 : 차주환
강원도 영월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대학 중문과 졸업. 동 대학원 수료. 미국 하버드대학교, 중국 중앙연구원에서 연구. 서울대학교 교수 역임. 옮긴 책으로 『중국 문화사 총론』, 『동양의 지혜』, 『사십자술(四十自述)』, 『시화와 만록』 외 다수가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논어서설(論語序說)
1. 학이(學而)
2. 위정(爲政)
3. 팔일(八佾)
4. 이인(里仁)
5. 공야장(公冶長)
6. 옹야(雍也)
7. 술이(述而)
8. 태백(泰伯)
9. 자한(子罕)
10. 향당(鄕黨)
11. 선진(先進)
12. 안연(顔淵)
13. 자로(子路)
14. 헌문(憲問)
15. 위영공(衛靈公)
16. 계씨(季氏)
17. 양화(陽貨)
18. 미자(微子)
19. 자장(子張)
20. 요왈(堯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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