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외교관 와카마쓰, 한국 땅에 최초로 목화와 소금을 보급하다
우리가 일제강점기 이후 입은 솜옷이나 무명옷의 원재료는 사실상 고려 말 문익점이 중국에서 올 때 붓두껍에 숨겨온 그 재래면이 아니다. 이 옷들은 미국산 개량종 육지면으로 만들어졌다. 질과 양에서 재래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육지면은 한 일본인 외교관이 1900년대 초 도입해 우리나라에 퍼졌다.
190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은 소금은 서해 개펄에서 난 ‘천일염’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는 천일염전은 존재하지 않았고, 소금이라면 바닷물을 끓여서 만든 자염(煮鹽)뿐이었다. 그러던 중 바로 이 일본인 외교관이 중국의 천일염전에 착안하여 만들자고 제안한 덕분에 ‘남서해안 천일염’이 시작되었다. 목포에서 외교관 인생을 시작한 일본인의 이름은 와카마쓰 도사부로(若松兎三郞)이다.
《목화꽃과 그 일본인》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와카마쓰 도사부로라는 인물을 발굴?추적해서 기록한 결과물이다.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1869년 규슈 오이타 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84세를 일기로 교토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와카마쓰라는 사람의 한평생을 이 책에 담았다. 또한 와카마쓰 개인의 삶과 더불어 이토 히로부미, 안창호 등 동시대를 살다간 굵직한 인물들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와카마쓰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목화를 재배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또한 천일염전을 개발하게 된 계기와 천일염이 우리 삶은 물론 우리 경제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수 있다.
‘착한’ 일본인 이야기
와카마쓰는 어릴 때부터 고향 마을 학교에서 늘 우등생이었다. 기억력이 좋고 답변도 잘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야말로 벽지의 작은 마을에서 보기 드문 수재였다. 동네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고들 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학비를 벌며 공부했다. 지역 유지의 도움을 받아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뒤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외교관의 길로 들어섰다.
첫 부임지 한반도 경성을 시작으로, 중국 항저우와 사스, 미국 뉴욕, 한반도 목포 등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그리고 내무관료로 원산, 평양, 부산에서 근무하며 인생의 절정기를 보냈다. 관료 생활을 마친 뒤에는 인천 쌀?콩거래소 사장으로 망해가던 회사를 재건했다. 일본 교토로 돌아가서는 도시샤대학에서 교우회장으로 활동하며 재일 한국인의 인권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한국인이 한국인 교회당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일본 경찰을 설득하러 다녔다. 만년을 가족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맛보는 가운데 유유자적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목화꽃과 그 일본인》을 쓴 저자 김충식은, 심정적으로는 ‘불편한’ 총독부의 일제 관료였지만 목화 재배와 천일염전 개발이라는 적산(敵産)의 레거시(유산)를 남기고 한반도를 떠난 와카마쓰라는 사람을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 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그의 삶을 기록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추규호 한일미래포럼 대표가 쓴 추천의 글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한일 간에는 글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곡절과 은원(恩怨)의 역사가 있지만, 이를 단세포적이고 조건반사적인 홑눈[單眼]으로만 보며 대응할 일이 아니다. 아베 정권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우경화와 반한?혐한의 퇴영적 바람은 그것대로 따지고 제어해나가야겠지만,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 또 큰 틀에서 ‘한일 관계사’를 겹눈으로 보아 입체적?종합적으로, 호혜적?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이롭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충식
가천대학교 교수(언론영상광고학과)로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에서 법학박사학위(미디어 저널리즘 전공)를 받았다. 1977년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30년간 뛰었으며, 주로 정치부에서 국회, 정당, 청와대, 외무부를 출입했다. 현장기자로서 금단의 성역이었던 중앙정보부, 즉 KCIA(Korea Central Intelligence Agency)를 심층 해부한 《남산의 부장들》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30대에 최연소 논설위원으로 발탁되었으며, 한국기자상을 두 번 수상(1984, 1993)했다. 문화부장, 사회부장을 거쳐 2002년부터 3년간 도쿄특파원 겸 지사장으로 주재하며 [아사히신문] 등에 칼럼을 썼다. 2004년 도쿄대학 대학원(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정치와 보도’ 과목을 1년간 강의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차관)을 지냈다. 저서로 《슬픈 열도》(2006), 《법에 사는 사람들》(공저, 1984), 《남산의 부장들》(2012)이 있고, 번역서로 《화해와 내셔널리즘》(2007)이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
추천사
1장 시골뜨기 소년의 푸른 꿈
고향 모리무라와 소년 시절
규슈 오이타 시골의 수재들
2장 독실한 크리스천의 영성으로
도시샤대학교에서 양심과 자유, 인류애를 배우다
독실한 기독교도 니지마 조와 인연을 맺다
도시샤대학교의 스승과 인재들
3장 학문과 배움의 궤적
꿈에 그리던 도쿄대학교에 들어가다
대학 시절의 인연들
재학 중 외무고시에 합격하다
4장 국제무대에 서는 설레는 꿈
외교관으로서 첫걸음을 내딛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공사의 원죄
자유와 다양성의 신천지, 뉴욕에 서다
중국 항저우와 사스의 영사 시절
5장 목포에 미국종 육지면을 심다
다시 밟은 목포에서 발견한 ‘대박’
육지면 시험재배지 고하도
육지면 시험재배 성공, 도쿄를 움직이다
목포 고하도와 충무공 이순신 유적
재배협회가 설립되어 대량보급으로
재배지 확장에 나서다
한일 공동으로 육지면 재배를 장려하다
이토 히로부미와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대화
권업모범장과 시험재배지
육지면 보급과 면 산업의 발달
새롭게 부각되는 면화의 가치
6장 천일염 꿈을 이루다
끓여 만든 재래식 ‘자염’과 수입 소금
천일염 시험염전을 만들다
한국 최초의 천일염 시험장
정부 주도로 천일제염을 시작하다
천일염을 수출하다
7장 외교관 인생에 닥친 위기
개항기 목포 부둣가의 노동시장
국제 문제로 번진 목포 노무분쟁
8장 통감부·총독부 관료 시절
‘목포외교관’에서 내무행정관으로
원산에서 보낸 내무행정 관료 시절
가슴 졸이며 보낸 평양이사관 시절
숨죽이고 소일하던 부산부윤 시절
9장 인천 ‘쌀?콩거래소’ 사장으로
총독부의 인천 근무 요청을 받다
인천 ‘쌀?콩거래소’의 뿌리
‘쌀?콩거래소’ 재건에 성공하다
주식회사 인천 ‘쌀?콩거래소’의 부침
서울주식시장과 인천거래소 합병 문제
10장 모교 도시샤대학교에 ‘재능 기부’
한반도를 떠나 교토로 돌아오다
도시샤대학교 교우회장으로 활동하다
11장 재일 한국인의 인권 옹호와 교회 설립
교토에서 한국인을 위해 힘쓰다
교토에 한국인 교회당을 세운 어빈 선교사
12장 가족과 함께 만년을 보내다
교토에서 유유자적한 퇴역인사
가장 아꼈던 큰딸 아쓰요
셋째 딸 미도리와 ‘화가 남편’ 오카모토 신소
넷째 딸 모미지와 의사 가족
와카마쓰 집안을 이끈 남자들
세 딸과 아내의 죽음
외교관 와카마쓰, 한국 땅에 최초로 목화와 소금을 보급하다
우리가 일제강점기 이후 입은 솜옷이나 무명옷의 원재료는 사실상 고려 말 문익점이 중국에서 올 때 붓두껍에 숨겨온 그 재래면이 아니다. 이 옷들은 미국산 개량종 육지면으로 만들어졌다. 질과 양에서 재래면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수한 육지면은 한 일본인 외교관이 1900년대 초 도입해 우리나라에 퍼졌다.
1900년대 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은 소금은 서해 개펄에서 난 ‘천일염’이 아니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는 천일염전은 존재하지 않았고, 소금이라면 바닷물을 끓여서 만든 자염(煮鹽)뿐이었다. 그러던 중 바로 이 일본인 외교관이 중국의 천일염전에 착안하여 만들자고 제안한 덕분에 ‘남서해안 천일염’이 시작되었다. 목포에서 외교관 인생을 시작한 일본인의 이름은 와카마쓰 도사부로(若松兎三郞)이다.
《목화꽃과 그 일본인》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와카마쓰 도사부로라는 인물을 발굴?추적해서 기록한 결과물이다. 메이지유신이 시작된 1869년 규슈 오이타 현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84세를 일기로 교토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와카마쓰라는 사람의 한평생을 이 책에 담았다. 또한 와카마쓰 개인의 삶과 더불어 이토 히로부미, 안창호 등 동시대를 살다간 굵직한 인물들의 이름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와카마쓰가 우리나라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목화를 재배하게 되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다. 또한 천일염전을 개발하게 된 계기와 천일염이 우리 삶은 물론 우리 경제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알 수 있다.
‘착한’ 일본인 이야기
와카마쓰는 어릴 때부터 고향 마을 학교에서 늘 우등생이었다. 기억력이 좋고 답변도 잘해서 마을 사람들 사이에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로 소문이 자자했다. 그야말로 벽지의 작은 마을에서 보기 드문 수재였다. 동네 사람들은 ‘개천에서 용 났다’고들 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여의치 않아 학비를 벌며 공부했다. 지역 유지의 도움을 받아 도쿄대학 법학부에 입학한 뒤 일본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해 외교관의 길로 들어섰다.
첫 부임지 한반도 경성을 시작으로, 중국 항저우와 사스, 미국 뉴욕, 한반도 목포 등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다. 그리고 내무관료로 원산, 평양, 부산에서 근무하며 인생의 절정기를 보냈다. 관료 생활을 마친 뒤에는 인천 쌀?콩거래소 사장으로 망해가던 회사를 재건했다. 일본 교토로 돌아가서는 도시샤대학에서 교우회장으로 활동하며 재일 한국인의 인권을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한국인이 한국인 교회당에서 자유롭게 예배를 볼 수 있도록 일본 경찰을 설득하러 다녔다. 만년을 가족과 함께 기쁨과 슬픔을 맛보는 가운데 유유자적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목화꽃과 그 일본인》을 쓴 저자 김충식은, 심정적으로는 ‘불편한’ 총독부의 일제 관료였지만 목화 재배와 천일염전 개발이라는 적산(敵産)의 레거시(유산)를 남기고 한반도를 떠난 와카마쓰라는 사람을 독자에게 있는 그대로 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그의 삶을 기록했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는 추규호 한일미래포럼 대표가 쓴 추천의 글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한일 간에는 글과 말로 다할 수 없는 곡절과 은원(恩怨)의 역사가 있지만, 이를 단세포적이고 조건반사적인 홑눈[單眼]으로만 보며 대응할 일이 아니다. 아베 정권으로 상징되는 일본의 우경화와 반한?혐한의 퇴영적 바람은 그것대로 따지고 제어해나가야겠지만, 그와는 다른 차원에서, 또 큰 틀에서 ‘한일 관계사’를 겹눈으로 보아 입체적?종합적으로, 호혜적?미래지향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우리에게도 이롭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충식
가천대학교 교수(언론영상광고학과)로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에서 법학박사학위(미디어 저널리즘 전공)를 받았다. 1977년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 기자로 30년간 뛰었으며, 주로 정치부에서 국회, 정당, 청와대, 외무부를 출입했다. 현장기자로서 금단의 성역이었던 중앙정보부, 즉 KCIA(Korea Central Intelligence Agency)를 심층 해부한 《남산의 부장들》을 펴내 큰 반향을 일으켰다. 30대에 최연소 논설위원으로 발탁되었으며, 한국기자상을 두 번 수상(1984, 1993)했다. 문화부장, 사회부장을 거쳐 2002년부터 3년간 도쿄특파원 겸 지사장으로 주재하며 [아사히신문] 등에 칼럼을 썼다. 2004년 도쿄대학 대학원(법학정치학연구과)에서 ‘정치와 보도’ 과목을 1년간 강의했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차관)을 지냈다. 저서로 《슬픈 열도》(2006), 《법에 사는 사람들》(공저, 1984), 《남산의 부장들》(2012)이 있고, 번역서로 《화해와 내셔널리즘》(2007)이 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
추천사
1장 시골뜨기 소년의 푸른 꿈
고향 모리무라와 소년 시절
규슈 오이타 시골의 수재들
2장 독실한 크리스천의 영성으로
도시샤대학교에서 양심과 자유, 인류애를 배우다
독실한 기독교도 니지마 조와 인연을 맺다
도시샤대학교의 스승과 인재들
3장 학문과 배움의 궤적
꿈에 그리던 도쿄대학교에 들어가다
대학 시절의 인연들
재학 중 외무고시에 합격하다
4장 국제무대에 서는 설레는 꿈
외교관으로서 첫걸음을 내딛다
명성황후를 살해한 일본공사의 원죄
자유와 다양성의 신천지, 뉴욕에 서다
중국 항저우와 사스의 영사 시절
5장 목포에 미국종 육지면을 심다
다시 밟은 목포에서 발견한 ‘대박’
육지면 시험재배지 고하도
육지면 시험재배 성공, 도쿄를 움직이다
목포 고하도와 충무공 이순신 유적
재배협회가 설립되어 대량보급으로
재배지 확장에 나서다
한일 공동으로 육지면 재배를 장려하다
이토 히로부미와 독립운동가 안창호의 대화
권업모범장과 시험재배지
육지면 보급과 면 산업의 발달
새롭게 부각되는 면화의 가치
6장 천일염 꿈을 이루다
끓여 만든 재래식 ‘자염’과 수입 소금
천일염 시험염전을 만들다
한국 최초의 천일염 시험장
정부 주도로 천일제염을 시작하다
천일염을 수출하다
7장 외교관 인생에 닥친 위기
개항기 목포 부둣가의 노동시장
국제 문제로 번진 목포 노무분쟁
8장 통감부·총독부 관료 시절
‘목포외교관’에서 내무행정관으로
원산에서 보낸 내무행정 관료 시절
가슴 졸이며 보낸 평양이사관 시절
숨죽이고 소일하던 부산부윤 시절
9장 인천 ‘쌀?콩거래소’ 사장으로
총독부의 인천 근무 요청을 받다
인천 ‘쌀?콩거래소’의 뿌리
‘쌀?콩거래소’ 재건에 성공하다
주식회사 인천 ‘쌀?콩거래소’의 부침
서울주식시장과 인천거래소 합병 문제
10장 모교 도시샤대학교에 ‘재능 기부’
한반도를 떠나 교토로 돌아오다
도시샤대학교 교우회장으로 활동하다
11장 재일 한국인의 인권 옹호와 교회 설립
교토에서 한국인을 위해 힘쓰다
교토에 한국인 교회당을 세운 어빈 선교사
12장 가족과 함께 만년을 보내다
교토에서 유유자적한 퇴역인사
가장 아꼈던 큰딸 아쓰요
셋째 딸 미도리와 ‘화가 남편’ 오카모토 신소
넷째 딸 모미지와 의사 가족
와카마쓰 집안을 이끈 남자들
세 딸과 아내의 죽음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