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그곳에도 꽃은 피어난다
윗동네 청춘들의 열정, 꿈, 사랑
“그들이 없었더라면 내 청춘도 없었다”
북한판 ‘응답하라’를 만나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얼마 전 막을 내린 [응답하라 1988] 내내 애잔한 그리움으로 귀를 적신 노래 [청춘]의 가사다. 흔히 청춘의 삶은 꽃에 비유된다. 아름답고 설레지만, 그래서 시리고 무겁다. 그래도 어쨌든 넘어야 할 시절이다. 지은이에게도 그랬다. 그녀가 대학에 입학한 열여섯 살 무렵부터 졸업해 사회에 나가는 스물여섯 때까지 십 년에 걸친 이야기 속에는 젊음의 환희와 좌절이 교차한다. 가장 재미난 부분은 역시 지은이의 연애 이야기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제일 큰 관심사가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지였듯, 이 책 역시 읽어 내려갈수록 비슷한 궁금증을 품게 된다. ‘과연 남편은 누굴까?’
“업히라.”
시내로 걸어갈 때 생긴 허물이 벗겨졌는지 발이 쓰라려 눈에 띄게 절룩거리던 참이었다.
“…….”
“업히라.”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선영은 다시 한 번 재우쳤다. _ 55쪽
“영희 동무는 제 여동생과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여동생을 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하고 고향도 그립던 차에…….”
낮에 함께 모내기를 했던 하사가 자신의 여동생을 들먹거리며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는 처음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귀찮아했지만, 적극적인 태도로 찾아오는 그가 언제부터인가 새롭게 보였다. _ 196쪽
그는 1군단 경무원이었다. 이렇게 알게 된 인연으로 “소조 동지, 소조 동지” 하면서 귀찮을 정도로 쫓아다녔다. 나이는 어리지만 나를 향한 애정은 얼마나 깊었던지 하루에 한 번 철령 고개를 넘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출장 때마다 어려움을 겪던 우리 소조원을 위해 매번 군대 버스를 내어주었다. _ 246쪽
“내가 먼저 너한테 고백할 걸 그랬다. 널 처음부터 좋게 생각했는데, 그동안 네 곁에 선영이 있어서 그렇게 못했어.”
나는 뜻하지 않은 그의 고백에 놀랐다. 그런 마음을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다니……. 그가 어딘지 모르게 다시 보였다. _ 233쪽
군것질부터 군사훈련까지
낯설고도 익숙한 청춘의 풍경
혈기 왕성한 나이임에도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은 북한의 ‘특수성’ 때문인지 이 책에는 간식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시험 기간에는 왜 그리 늘 입이 궁금한 건지, 아이들은 딱딱한 강냉이를 하도 많이 씹어 턱이 아프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학 때마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5킬로그램이나 되는 강냉이는 얼마 못 가 동이 났다. 북한의 대학생 중에 사각턱이 많은 것도 바로 강냉이 때문이라는 믿지 못할 말이 나도는 이유였다. _ 102쪽, “대학 생활”
유난히 고소한 맛을 자랑하는 속도전가루떡. 사서 먹는 것도 맛있지만 만들어 먹으면 더 맛있다. 한 호실에서 속도전가루떡을 만들면 그 냄새가 기숙사 한 층 전체로 퍼졌다. …… 집에서 가져온 속도전가루가 떨어진 호실에서는 학교 울타리 너머 아주머니를 통해서라도 떡을 사 먹고 나서야 밀린 공부를 하거나 잠을 청할 수 있었다. _ 102쪽, “대학 생활”
북한 대학생들에게 화장은 금기 사항이지만, 그들은 아무리 화장품을 압수당해도 어떻게든 또 마련한다. 또 학년이 올라갈수록 화장술이 나날이 좋아지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좋은 ‘브랜드’를 쓰는 것이다.
신의주와 평양의 화장품은 생산량이 적고 대부분 세대별로 배당하는 터라 ‘빽’이 없으면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웠다. 화장품의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수십 가지의 천연 약재와 추출물, 그리고 수질 좋은 샘물을 원료로 하는 최고급품이었다. 그쪽이 고향인 아이들은 방학이 끝나면 부탁받은 화장품을 한가득 갖고 학교로 돌아왔다. _ 138쪽, “대학 생활”
북한 대학생도 틈나는 대로 놀고 데이트도 한다. 특히 송도원 해수욕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라고 한다. 옥류관이나 대동강변 버드나무처럼 우리 귀에 익숙한 곳들도 있다.
원산 시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송도원은 높낮이가 다른 수려한 산줄기와 동해의 맑고 푸른 파도, 바다 기슭을 따라 펼쳐진 흰 모래사장, 무리 지어 핀 붉은 해당화와 짙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났다. 여가를 보낼 장소가 마땅치 않은 북한에서 송도원은 명절이면 피서 철의 남한 해운대처럼 사람들로 붐벼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다. _ 143쪽, “송도원 해수욕장”
우리는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도 가보고 보통강과 대동강 강가를 따라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대동강 주변에는 연초록색 긴 머리를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강변을 따라 늘어져 있었다. 그 아래 놓인 긴 의자는 봄밤을 즐기려는 수많은 청춘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_ 225쪽, “사랑의 절정”
남녀 대학생 모두에게 군 복무는 중요한 의무다. 이때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배운다.
부대와 인접한 마을에서는 장독과 김치, 돼지와 닭 등이 없어지는 사고를 여러 번 당한 터라 나름 경비가 엄했다. 우물의 철근 뚜껑도 누가 가져가지 못하게 단단히 막아놓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마침내 철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렇듯 인근 농장의 재산을 가져오는 방법으로 명령을 집행했던 것이다. _ 164쪽, “대학생 교도대”
‘농촌 지원’도 북한 대학생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남한 대학생의 ‘농활’과 달리 매일 정해진 할당량이 있어 중노동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낼 여러 비법도 있다.
북한에서는 남자 나이 스물일곱은 금값, 스물여덟은 은값, 스물아홉은 동값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제대할 즈음이 바로 스물일곱이었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식량이나 군수품 등을 받을 수 있는 때였다. 그런 물품들은 생활에 적잖은 보탬이 되었으므로 여성들이 선호하는 신랑감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_ 187쪽, “농촌 지원”
남학생들 앞에서는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그들이 찾아오는 걸 일부러 막거나 굳이 사양할 게 뭐람’ 하고 생각했다. 다른 남자들의 도움을 받는 걸 시샘하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던 우리로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실속을 차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군인들을 가까이하는 게 뭐가 어때서? 배고프단 말만 해도 큰 그릇에 이밥을 얼마나 많이 담아오는데 말이다.” _ 193쪽, “농촌 지원”
사람 향기 물씬 나는 북한을 말한다
북핵, 김정은, 김정일, 김일성, 리설주. 북한을 이야기할 때 여기서 벗어나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그 땅에서 일상을 꾸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모른다. 언젠가부터는 궁금해하지 않은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 그래서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인 지은이가 정치가 아닌 사랑 이야기를 들고 왔다. 우리처럼 ‘연애 세포’를 지니고 우정을 쌓으며 꿈을 꾸는 북한 청춘의 모습을 남한 청춘이 알길 바라는 마음이다.
북한에 대해 엄혹한 뉴스만 들려오는 상황에서 이 책이 주목하는 ‘청춘’은 어디서든 그러하듯이 희망이다. “‘젊음’은 일종의 만국 공통어”라 북한 청춘의 이야기는 남북한 청춘을 넘어 모든 세대를 잇는 호소력을 지녔다. 이 책 전반에서 들려주는 북한의 ‘청춘’을 통해 우리는 북한을 좀 더 가까이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칙칙함, 냉혹함, 어두움, 참혹함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세태에 물들지 않은 인간미도 넘친다. ‘아랫동네’ 청춘들의 열정, 꿈, 사랑이 ‘윗동네’에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청춘이 꽃이라면, 꽃은 언제 어디서든 꼭 한번은 피어나기 때문이다. _ 8쪽, “책을 펴내며”
▣ 작가 소개
저자 : 김영희
1965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태어났다. 북한의 종합적 생산조직인 특급기업소의 재정회계 부문에서 근무했으며, 2002년 12월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입국했다. 2006년 8월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2013년 2월 동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푸코와 북한사회) 신체왜소의 정치경제학』, 『탈북 박사부부가 새롭게 쓴 논문작성법』, 『탈북 박사부부가 본 북한: 딜레마와 몸부림』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시골 소녀의 대학 입성
고향을 떠나 대학으로│아버지의 설득, 그리고 나의 선택│원산경제대학 재정과 2반
대학 기숙사
내무반 같은 생활│모범호실│공동생활은 이렇게 버텨야│그 남자, 최선영│뾰족구두에 등을 내주다
그리운 아버지
훌륭한 의사, 무심한 남편│‘출신 성분’이 앗아간 아버지의 꿈│오해가 부른 스캔들
백두산 답사
한껏 부푼 동무들│선영의 부모님│곤장덕의 옷 썰매│여동무를 위한 인간 발판
대학 생활
외출의 또 다른 이유│날마다 명절이었으면│구답시험의 두려움│개성 깍쟁이│방귀쟁이 짝꿍│양심 고백, 그리고 퇴학│똥통에 빠진 아이│여학생은 왜 화장을 할까
송도원 해수욕장
충격의 비키니 수영복│명애의 사랑 방식
대학생 교도대
다림발의 노하우│선영과 함께 선 야간 근무│식당 근무가 좋아│잊지 못할 기말시험│군복이 도둑질을 부추기다│남자들이 얻은 별명
농촌 지원
머리카락 괴담│‘동무’보다 정다운 ‘님’│쑥떡과 콩청대│남자가 곁에 누워도 애가 생기나│군인들의 구애 작전│남동무들의 질투│내 마음을 흔든 군부대 하사│소문을 듣고 날아온 선영│넘을 수 없는 군인과 여대생의 장벽
사랑의 절정
세 커플이 그려본 미래│봄날의 눈석이│선영의 사랑 고백│끝없이 걷고 싶은 평양의 밤
사랑과 우정의 갈림길에서
배신, 그리고 학철의 짝사랑│쉽게 풀리지 않는 마음│선영의 감 배낭│회양에서 만난 남동무들│7년 순정의 결말
청춘의 끝
나는 사랑한 죄밖에 없다│엇갈린 인연│이루지 못한 사랑
또 다른 시작
졸업식│청춘이라는 훈장│내가 선택한 사랑
끝나지 않은 이야기
그곳에도 꽃은 피어난다
윗동네 청춘들의 열정, 꿈, 사랑
“그들이 없었더라면 내 청춘도 없었다”
북한판 ‘응답하라’를 만나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
얼마 전 막을 내린 [응답하라 1988] 내내 애잔한 그리움으로 귀를 적신 노래 [청춘]의 가사다. 흔히 청춘의 삶은 꽃에 비유된다. 아름답고 설레지만, 그래서 시리고 무겁다. 그래도 어쨌든 넘어야 할 시절이다. 지은이에게도 그랬다. 그녀가 대학에 입학한 열여섯 살 무렵부터 졸업해 사회에 나가는 스물여섯 때까지 십 년에 걸친 이야기 속에는 젊음의 환희와 좌절이 교차한다. 가장 재미난 부분은 역시 지은이의 연애 이야기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제일 큰 관심사가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지였듯, 이 책 역시 읽어 내려갈수록 비슷한 궁금증을 품게 된다. ‘과연 남편은 누굴까?’
“업히라.”
시내로 걸어갈 때 생긴 허물이 벗겨졌는지 발이 쓰라려 눈에 띄게 절룩거리던 참이었다.
“…….”
“업히라.”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선영은 다시 한 번 재우쳤다. _ 55쪽
“영희 동무는 제 여동생과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여동생을 본 지가 하도 오래되어서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하고 고향도 그립던 차에…….”
낮에 함께 모내기를 했던 하사가 자신의 여동생을 들먹거리며 나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는 처음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귀찮아했지만, 적극적인 태도로 찾아오는 그가 언제부터인가 새롭게 보였다. _ 196쪽
그는 1군단 경무원이었다. 이렇게 알게 된 인연으로 “소조 동지, 소조 동지” 하면서 귀찮을 정도로 쫓아다녔다. 나이는 어리지만 나를 향한 애정은 얼마나 깊었던지 하루에 한 번 철령 고개를 넘는 버스를 기다리느라 출장 때마다 어려움을 겪던 우리 소조원을 위해 매번 군대 버스를 내어주었다. _ 246쪽
“내가 먼저 너한테 고백할 걸 그랬다. 널 처음부터 좋게 생각했는데, 그동안 네 곁에 선영이 있어서 그렇게 못했어.”
나는 뜻하지 않은 그의 고백에 놀랐다. 그런 마음을 여태까지 숨기고 있었다니……. 그가 어딘지 모르게 다시 보였다. _ 233쪽
군것질부터 군사훈련까지
낯설고도 익숙한 청춘의 풍경
혈기 왕성한 나이임에도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은 북한의 ‘특수성’ 때문인지 이 책에는 간식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시험 기간에는 왜 그리 늘 입이 궁금한 건지, 아이들은 딱딱한 강냉이를 하도 많이 씹어 턱이 아프면서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방학 때마다 각자 집에서 가져온 5킬로그램이나 되는 강냉이는 얼마 못 가 동이 났다. 북한의 대학생 중에 사각턱이 많은 것도 바로 강냉이 때문이라는 믿지 못할 말이 나도는 이유였다. _ 102쪽, “대학 생활”
유난히 고소한 맛을 자랑하는 속도전가루떡. 사서 먹는 것도 맛있지만 만들어 먹으면 더 맛있다. 한 호실에서 속도전가루떡을 만들면 그 냄새가 기숙사 한 층 전체로 퍼졌다. …… 집에서 가져온 속도전가루가 떨어진 호실에서는 학교 울타리 너머 아주머니를 통해서라도 떡을 사 먹고 나서야 밀린 공부를 하거나 잠을 청할 수 있었다. _ 102쪽, “대학 생활”
북한 대학생들에게 화장은 금기 사항이지만, 그들은 아무리 화장품을 압수당해도 어떻게든 또 마련한다. 또 학년이 올라갈수록 화장술이 나날이 좋아지는데 그 비결 중 하나가 좋은 ‘브랜드’를 쓰는 것이다.
신의주와 평양의 화장품은 생산량이 적고 대부분 세대별로 배당하는 터라 ‘빽’이 없으면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웠다. 화장품의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수십 가지의 천연 약재와 추출물, 그리고 수질 좋은 샘물을 원료로 하는 최고급품이었다. 그쪽이 고향인 아이들은 방학이 끝나면 부탁받은 화장품을 한가득 갖고 학교로 돌아왔다. _ 138쪽, “대학 생활”
북한 대학생도 틈나는 대로 놀고 데이트도 한다. 특히 송도원 해수욕장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명소라고 한다. 옥류관이나 대동강변 버드나무처럼 우리 귀에 익숙한 곳들도 있다.
원산 시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송도원은 높낮이가 다른 수려한 산줄기와 동해의 맑고 푸른 파도, 바다 기슭을 따라 펼쳐진 흰 모래사장, 무리 지어 핀 붉은 해당화와 짙푸른 소나무 숲이 어우러져 경관이 빼어났다. 여가를 보낼 장소가 마땅치 않은 북한에서 송도원은 명절이면 피서 철의 남한 해운대처럼 사람들로 붐벼 발 디딜 틈이 없는 곳이다. _ 143쪽, “송도원 해수욕장”
우리는 냉면으로 유명한 옥류관에도 가보고 보통강과 대동강 강가를 따라 하염없이 걷기도 했다. 대동강 주변에는 연초록색 긴 머리를 늘어뜨린 버드나무가 강변을 따라 늘어져 있었다. 그 아래 놓인 긴 의자는 봄밤을 즐기려는 수많은 청춘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다. _ 225쪽, “사랑의 절정”
남녀 대학생 모두에게 군 복무는 중요한 의무다. 이때 식량을 조달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배운다.
부대와 인접한 마을에서는 장독과 김치, 돼지와 닭 등이 없어지는 사고를 여러 번 당한 터라 나름 경비가 엄했다. 우물의 철근 뚜껑도 누가 가져가지 못하게 단단히 막아놓았다.
우리는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마침내 철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렇듯 인근 농장의 재산을 가져오는 방법으로 명령을 집행했던 것이다. _ 164쪽, “대학생 교도대”
‘농촌 지원’도 북한 대학생이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남한 대학생의 ‘농활’과 달리 매일 정해진 할당량이 있어 중노동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낼 여러 비법도 있다.
북한에서는 남자 나이 스물일곱은 금값, 스물여덟은 은값, 스물아홉은 동값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제대할 즈음이 바로 스물일곱이었다. 국가에서 지급하는 식량이나 군수품 등을 받을 수 있는 때였다. 그런 물품들은 생활에 적잖은 보탬이 되었으므로 여성들이 선호하는 신랑감 조건일 수밖에 없었다. _ 187쪽, “농촌 지원”
남학생들 앞에서는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그들이 찾아오는 걸 일부러 막거나 굳이 사양할 게 뭐람’ 하고 생각했다. 다른 남자들의 도움을 받는 걸 시샘하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던 우리로서는 그들의 비위를 맞추면서도 실속을 차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군인들을 가까이하는 게 뭐가 어때서? 배고프단 말만 해도 큰 그릇에 이밥을 얼마나 많이 담아오는데 말이다.” _ 193쪽, “농촌 지원”
사람 향기 물씬 나는 북한을 말한다
북핵, 김정은, 김정일, 김일성, 리설주. 북한을 이야기할 때 여기서 벗어나 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는 그 땅에서 일상을 꾸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을 모른다. 언젠가부터는 궁금해하지 않은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 그래서 손꼽히는 북한 전문가인 지은이가 정치가 아닌 사랑 이야기를 들고 왔다. 우리처럼 ‘연애 세포’를 지니고 우정을 쌓으며 꿈을 꾸는 북한 청춘의 모습을 남한 청춘이 알길 바라는 마음이다.
북한에 대해 엄혹한 뉴스만 들려오는 상황에서 이 책이 주목하는 ‘청춘’은 어디서든 그러하듯이 희망이다. “‘젊음’은 일종의 만국 공통어”라 북한 청춘의 이야기는 남북한 청춘을 넘어 모든 세대를 잇는 호소력을 지녔다. 이 책 전반에서 들려주는 북한의 ‘청춘’을 통해 우리는 북한을 좀 더 가까이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칙칙함, 냉혹함, 어두움, 참혹함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세태에 물들지 않은 인간미도 넘친다. ‘아랫동네’ 청춘들의 열정, 꿈, 사랑이 ‘윗동네’에도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청춘이 꽃이라면, 꽃은 언제 어디서든 꼭 한번은 피어나기 때문이다. _ 8쪽, “책을 펴내며”
▣ 작가 소개
저자 : 김영희
1965년 함경북도 길주군에서 태어났다. 북한의 종합적 생산조직인 특급기업소의 재정회계 부문에서 근무했으며, 2002년 12월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입국했다. 2006년 8월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2013년 2월 동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KDB산업은행 북한경제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상임위원, 기획재정부 중장기전략위원회 민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푸코와 북한사회) 신체왜소의 정치경제학』, 『탈북 박사부부가 새롭게 쓴 논문작성법』, 『탈북 박사부부가 본 북한: 딜레마와 몸부림』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시골 소녀의 대학 입성
고향을 떠나 대학으로│아버지의 설득, 그리고 나의 선택│원산경제대학 재정과 2반
대학 기숙사
내무반 같은 생활│모범호실│공동생활은 이렇게 버텨야│그 남자, 최선영│뾰족구두에 등을 내주다
그리운 아버지
훌륭한 의사, 무심한 남편│‘출신 성분’이 앗아간 아버지의 꿈│오해가 부른 스캔들
백두산 답사
한껏 부푼 동무들│선영의 부모님│곤장덕의 옷 썰매│여동무를 위한 인간 발판
대학 생활
외출의 또 다른 이유│날마다 명절이었으면│구답시험의 두려움│개성 깍쟁이│방귀쟁이 짝꿍│양심 고백, 그리고 퇴학│똥통에 빠진 아이│여학생은 왜 화장을 할까
송도원 해수욕장
충격의 비키니 수영복│명애의 사랑 방식
대학생 교도대
다림발의 노하우│선영과 함께 선 야간 근무│식당 근무가 좋아│잊지 못할 기말시험│군복이 도둑질을 부추기다│남자들이 얻은 별명
농촌 지원
머리카락 괴담│‘동무’보다 정다운 ‘님’│쑥떡과 콩청대│남자가 곁에 누워도 애가 생기나│군인들의 구애 작전│남동무들의 질투│내 마음을 흔든 군부대 하사│소문을 듣고 날아온 선영│넘을 수 없는 군인과 여대생의 장벽
사랑의 절정
세 커플이 그려본 미래│봄날의 눈석이│선영의 사랑 고백│끝없이 걷고 싶은 평양의 밤
사랑과 우정의 갈림길에서
배신, 그리고 학철의 짝사랑│쉽게 풀리지 않는 마음│선영의 감 배낭│회양에서 만난 남동무들│7년 순정의 결말
청춘의 끝
나는 사랑한 죄밖에 없다│엇갈린 인연│이루지 못한 사랑
또 다른 시작
졸업식│청춘이라는 훈장│내가 선택한 사랑
끝나지 않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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