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배움에서 시작해 하늘의 뜻을 알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어 가난에 시달리고 천한 일에 종사하면서도 부지런히 이치를 탐구하고 실천에 힘써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20대에 이미 그 이름을 떨쳐 제자들이 따르게 되었으며 그의 관심은 예(禮)와 악(樂)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있었다.
공자는 인(仁)의 실천에 바탕을 둔 개인적 인격의 완성과 예(禮)로 표현되는 사회질서의 확립을 강조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이상 국가를 이 땅에 건설하려 하였다. 공자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그의 사상은 실천을 전제로 한 도덕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논어의 내용은 한마디로 ‘배움’에서 시작해 ‘하늘의 뜻을 아는 것(知命)’까지로 되어 있는데 그 흐름은 공자의 말, 공자와 제자 사이의 대화, 공자와 당시 사람들과의 대화, 제자들의 말, 제자들 간의 대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들 모두는 공자(孔子)라는 인물의 사상과 행동을 보여 주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황간(皇侃)이 논어의 첫 편에서 ‘옥돌은 다듬지 않으면 옥기가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玉不琢不成器人不學0不知道)’라고 했듯이 누구라도 배워야만 하늘의 뜻을 알고 깨우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인(仁)이란 곧 사랑하는 것이다
공자가 살았던 당시의 노(魯)나라는 계손ㆍ맹손ㆍ숙손의 삼환씨(三桓氏)가 정권을 농락하는 형편이었다. 공자는 51세 때 대사구(지금의 법무장관)까지 역임하였으나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뒤 천하를 다니면서 정치적 혁신을 실현하려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68세에 고국으로 돌아와 후진들의 양성에 힘썼거니와 그의 제자는 3,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논어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했을 때, 소위 분서(焚書)의 화를 입었다. 진시황은 유교의 정치사상이 자기의 전제적 통일 국가의 정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책을 불사르고 유학자들을 땅 구덩이에 파묻었다. 그 때문에 논어는 다른 서적과 함께 잠시 자취를 감추었으나 한나라 때에 이르러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 후 송나라 때에 이르러 유교의 대성자(大成者)로 알려진 주희(朱熹)가 ‘대학’, ‘중용’, ‘논어’, ‘맹자’의 네 가지 책을 합쳐서 ‘사서집주(四書集註)’를 만든 것이 오늘날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이다.
본서에서 다루는 인(仁)은 바로 공자 사상의 핵심이다. 공자는 ‘인은 남을 사랑함이다.(仁愛人也)’라고 했다. 즉 ‘인은 남을 사랑하는 덕행이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하늘로부터 착한 성품을 받아 지니고 있다. 그 착한 성품의 기본이 곧 인심(仁心)으로, 인(仁)은 인심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과 자연 만물을 사랑하고 키워주는 인덕(仁德)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 작가 소개
저 : 공자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인 B.C.551년,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방인 노(魯)나라의 작은 마을인 추읍( 邑)에서 태어났다. 이 때는 인도의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시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은(殷)나라 왕족의 몰락한 후예의 집안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급무사였던 숙량흘(叔梁紇)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안징재(顔徵在)였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고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당시 공자의 집안은 몰락하여 겨우 벼슬을 할 수 있는 계급인 사(士)에 속해 있었다. 사계급은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공자 나이 24살 되던 기원전 528년에 공자의 어머니는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방(防) 땅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묻고 삼년상을 지낸 뒤 또 2, 3년 지나서야 다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한 주(周)나라를 동경하였고, 그 반대로 당시의 권세 있는 대부(大夫)들이 제후(諸侯)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농단하던 사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게 된 공자가 정치에 관여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자가 살던 당시 춘추시대에는 국가간이나 나라안이나 간에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명목의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仁)의 실천,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했던 공자로서는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서도 책이나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자기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설파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직접 벼슬을 맡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벽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두터웠고, 많은 좌절과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인 도덕정치철학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계승되어 한(漢)나라에서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이래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교육자와 뛰어난 정치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낸 공자도 인간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 리(鯉)와 가장 아끼던 제자 안연(顔淵)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며, 여러 나라를 떠도는 가운데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테러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년에는 이런 모든 것을 잊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 『춘추(春秋)』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에 재미를 붙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공부하는 한편, 고향의 이상이 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기원전 479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가장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사상의 중심을 인(仁)에 두었다. 최고의 덕을 인으로 본 공자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대표작품인 『논어』는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책의 제목이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편저 : 장개충
張塏忠
194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신학을 4년간 공부하다 중퇴했다. ㈜ 어문각에서 18년간 기획과 편집을, ㈜ 삼성당에서 6년간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가나다 활용옥편》, 《정통한자교본》, 《한자능력검정시험》 8~2급, 《고사성어·숙어대백과》 등 한자 관련 책과 《한눈에 익히는 천자문》, 《한눈에 익히는 명심보감》, 《청소년을 위한 논어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장자이야기》, 《정조, 이산의 오경백편》,《초한지》《삼국지》 《용龍을 탄 여자: 황후열전》 등 고전 다수를 읽기 쉽게 편저했다. 현재 《내가 합격한 1급한자》를 집필 중에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
배움에서 시작해 하늘의 뜻을 알다_4
차례
1장 학문의 기쁨과 덕행_9
2장 진리의 빛_23
3장 예절과 문화_43
4장 공자의 인덕_63
5장 슬기와 지혜_79
6장 인생의 행복_103
7장 용모와 태도_123
8장 바르게 사는 도리_149
9장 공자의 덕행_163
10장 예악 실천_185
11장 공자의 제자들에 대한 평?191
12장 성현의 가르침_201
13장 인격수양과 처세_217
14장 수신제가_233
15장 처세와 명언_245
16장 유익한 즐거움_261
17장 공자의 탄식_271
18장 현인들의 출사와 은둔생활_283
19장 공자의 제자들_291
20장 정치적 이상과 천명사상_305
공자 연보_313
배움에서 시작해 하늘의 뜻을 알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어 가난에 시달리고 천한 일에 종사하면서도 부지런히 이치를 탐구하고 실천에 힘써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20대에 이미 그 이름을 떨쳐 제자들이 따르게 되었으며 그의 관심은 예(禮)와 악(樂)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있었다.
공자는 인(仁)의 실천에 바탕을 둔 개인적 인격의 완성과 예(禮)로 표현되는 사회질서의 확립을 강조하였으며,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이상 국가를 이 땅에 건설하려 하였다. 공자는 철저한 현실주의자로 그의 사상은 실천을 전제로 한 도덕이 핵심을 이루고 있다.
논어의 내용은 한마디로 ‘배움’에서 시작해 ‘하늘의 뜻을 아는 것(知命)’까지로 되어 있는데 그 흐름은 공자의 말, 공자와 제자 사이의 대화, 공자와 당시 사람들과의 대화, 제자들의 말, 제자들 간의 대화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이들 모두는 공자(孔子)라는 인물의 사상과 행동을 보여 주려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황간(皇侃)이 논어의 첫 편에서 ‘옥돌은 다듬지 않으면 옥기가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모른다.(玉不琢不成器人不學0不知道)’라고 했듯이 누구라도 배워야만 하늘의 뜻을 알고 깨우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인(仁)이란 곧 사랑하는 것이다
공자가 살았던 당시의 노(魯)나라는 계손ㆍ맹손ㆍ숙손의 삼환씨(三桓氏)가 정권을 농락하는 형편이었다. 공자는 51세 때 대사구(지금의 법무장관)까지 역임하였으나 자신의 포부를 펼치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 뒤 천하를 다니면서 정치적 혁신을 실현하려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68세에 고국으로 돌아와 후진들의 양성에 힘썼거니와 그의 제자는 3,0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논어는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했을 때, 소위 분서(焚書)의 화를 입었다. 진시황은 유교의 정치사상이 자기의 전제적 통일 국가의 정치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책을 불사르고 유학자들을 땅 구덩이에 파묻었다. 그 때문에 논어는 다른 서적과 함께 잠시 자취를 감추었으나 한나라 때에 이르러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그 후 송나라 때에 이르러 유교의 대성자(大成者)로 알려진 주희(朱熹)가 ‘대학’, ‘중용’, ‘논어’, ‘맹자’의 네 가지 책을 합쳐서 ‘사서집주(四書集註)’를 만든 것이 오늘날 널리 읽히고 있는 것이다.
본서에서 다루는 인(仁)은 바로 공자 사상의 핵심이다. 공자는 ‘인은 남을 사랑함이다.(仁愛人也)’라고 했다. 즉 ‘인은 남을 사랑하는 덕행이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하늘로부터 착한 성품을 받아 지니고 있다. 그 착한 성품의 기본이 곧 인심(仁心)으로, 인(仁)은 인심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과 자연 만물을 사랑하고 키워주는 인덕(仁德)의 모체라고 할 수 있다.
▣ 작가 소개
저 : 공자
공자(孔子)는 춘추시대 말기인 B.C.551년, 현재 산동성(山東省) 곡부(曲阜) 지방인 노(魯)나라의 작은 마을인 추읍( 邑)에서 태어났다. 이 때는 인도의 석가모니가 태어난지 10여년 뒤이고, 소크라테스가 태어나기 얼마 전 시기에 해당한다. 공자는 은(殷)나라 왕족의 몰락한 후예의 집안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지는데, 그의 아버지는 급무사였던 숙량흘(叔梁紇)이었고,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안징재(顔徵在)였다.
아버지는 제(齊)나라와의 싸움에서 군공(軍功)을 세운 부장(部將)이었다. 공자의 어머니 안징재는 이구산(尼丘山)에 남몰래 치성을 드려 공자를 낳았고 공자의 머리가 움푹 들어갔기 때문에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라고 하였다고 한다. 공자가 태어날 때 그의 집안은 불우하였고 세 살 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에 매우 가난하고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장례식마저 제대로 치르지 못할 정도였던 모양이다. 당시 공자의 집안은 몰락하여 겨우 벼슬을 할 수 있는 계급인 사(士)에 속해 있었다. 사계급은 위로는 귀족과 대부, 아래로는 서민의 중간에 있어서 벼슬살이를 하지 않으면 매우 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공자 나이 24살 되던 기원전 528년에 공자의 어머니는 40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를 방(防) 땅에 아버지와 합장하여 묻고 삼년상을 지낸 뒤 또 2, 3년 지나서야 다시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다. 공자가 꿈꾸던 세상은 예(禮)와 덕(德)과 문(文)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공자는 그러한 이상을 실현한 주(周)나라를 동경하였고, 그 반대로 당시의 권세 있는 대부(大夫)들이 제후(諸侯)들을 무시하고 권력을 농단하던 사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였다. 노나라의 창시자로 주왕조(周王朝) 건국의 공신이기도 했던 주공(周公)을 흠모하여 그 전통적 문화습득에 노력하게 된 공자가 정치에 관여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자가 살던 당시 춘추시대에는 국가간이나 나라안이나 간에 약육강식의 힘의 논리가 횡행하여 온갖 명목의 전쟁과 난리가 연이어 일어나 민중들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지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인(仁)의 실천, 곧 백성을 사랑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했던 공자로서는 그러한 현실을 목도하고서도 책이나 읽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만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다.
당시의 정치가들에게 자기의 덕치주의(德治主義)를 설파하기 위해 수레를 타고 여러 나라를 주유하기도 하였고, 직접 벼슬을 맡아서 자기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실정치의 벽은 그의 꿈을 실현하기엔 너무나 두터웠고, 많은 좌절과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합리적인 도덕정치철학은 시대를 넘어 후대에 계승되어 한(漢)나라에서 국정이념으로 채택된 이래 동양의 역사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교육자와 뛰어난 정치철학자로서의 일생을 보낸 공자도 인간적으로는 매우 불행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것 같이 어려서 어버이를 여의었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 리(鯉)와 가장 아끼던 제자 안연(顔淵)을 먼저 보내는 슬픔을 겪었으며, 여러 나라를 떠도는 가운데 양식이 떨어지기도 하고 테러의 위협을 받기도 하였다. 그래서 노년에는 이런 모든 것을 잊고 『시경(詩經)』, 『서경(書經)』 , 『춘추(春秋)』같은 책을 엮고 『역경(易經)』에 재미를 붙여 책을 묶은 끈이 세 번이나 떨어질 정도로 공부하는 한편, 고향의 이상이 큰 젊은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가 기원전 479년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공자는 위정자는 덕이 있어야 하며 도덕과 예의에 의한 교화가 가장 이상적인 지배방법이라고 생각하였고, 그 사상의 중심을 인(仁)에 두었다. 최고의 덕을 인으로 본 공자는, 인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그의 대표작품인 『논어』는 유가(儒家)의 성전(聖典)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책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語錄)이기도 하다. 공자의 혼잣말을 기록해 놓은 것과 제자의 물음에 공자가 대답한 것, 제자들끼리 나눈 이야기, 당대의 정치가들이나 평범한 마을사람들과 나눈 이야기 등 다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책의 제목이 『논어』가 되었다고 한다.
편저 : 장개충
張塏忠
1949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가톨릭대학교에서 철학·신학을 4년간 공부하다 중퇴했다. ㈜ 어문각에서 18년간 기획과 편집을, ㈜ 삼성당에서 6년간 전무이사를 역임했다. 《가나다 활용옥편》, 《정통한자교본》, 《한자능력검정시험》 8~2급, 《고사성어·숙어대백과》 등 한자 관련 책과 《한눈에 익히는 천자문》, 《한눈에 익히는 명심보감》, 《청소년을 위한 논어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장자이야기》, 《정조, 이산의 오경백편》,《초한지》《삼국지》 《용龍을 탄 여자: 황후열전》 등 고전 다수를 읽기 쉽게 편저했다. 현재 《내가 합격한 1급한자》를 집필 중에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
배움에서 시작해 하늘의 뜻을 알다_4
차례
1장 학문의 기쁨과 덕행_9
2장 진리의 빛_23
3장 예절과 문화_43
4장 공자의 인덕_63
5장 슬기와 지혜_79
6장 인생의 행복_103
7장 용모와 태도_123
8장 바르게 사는 도리_149
9장 공자의 덕행_163
10장 예악 실천_185
11장 공자의 제자들에 대한 평?191
12장 성현의 가르침_201
13장 인격수양과 처세_217
14장 수신제가_233
15장 처세와 명언_245
16장 유익한 즐거움_261
17장 공자의 탄식_271
18장 현인들의 출사와 은둔생활_283
19장 공자의 제자들_291
20장 정치적 이상과 천명사상_305
공자 연보_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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