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장쾌한 일 좀 없을까 -김풍기 교수의 옛 시 읽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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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김풍기
출판사항교유서가, 발행일:2015/12/28
형태사항p.237p. A5판:21CM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54639057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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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한시는 개인의 서정을 표출하는 매개체

떨리는 현의 소리만을 듣는 사람은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무현금(無絃琴), 줄 없는 거문고를 즐기는 사람이야말로 경지에 오른 사람이다. 흔들리는 마음으로 쓴 시만을 즐기는 사람은 진정한 시를 읽지 못한다. 무언시(無言詩), 언어를 넘어서 우주의 침묵을 느끼게 하는 시를 읽어야 진정한 독자이다. 움직임으로써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태평천하를 만들지 못한다. 무위이화(無爲而化), 아무것도 내 힘으로 하지 않는데도 모든 것이 교화되고 이루어지는 경지를 알아야 진정한 평화를 이룩할 수 있다. 이것이 옛 시를 대하는 지은이의 기본 관점이다. 지은이는 “우리 주변의 일상은 여전히 고되고 팍팍하지만, 그래도 그런 현실을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속에서 빚어지는 갈등의 소중함을, 번뇌의 필요성을, 떨림의 아름다움을 느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면서, 특히 개인이 서정을 표출하는 매개체로서의 한시에 주목한다.

이별시의 처연한 아름다움

자신만의 특별한 감정이 남들에게는 그리 큰 공감을 줄 수 없다고 해도, 우리는 개인의 체험을 무시하기 어렵다. 그것은 문학 작품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며 마지막 힘이기 때문이다. 이별에 대한 절절함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별시의 진실성 혹은 그 처연한 아름다움을 함께 기억한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먼저 이별의 시에 담긴 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지 생각해본다. 그러면서 작자의 체험과 그 체험이 얼마나 절절했는지를 의식한다.

空門寂寞汝思家 절은 적막하니 너는 집 생각
禮別雲房下九華 스님을 이별하고 구화산 내려간다
愛向竹欄騎竹馬 고향에서 죽마 타던 일 그리웠고
懶於金地聚金沙 절에서 금모래 모으던 일 싫증났었지
添甁澗底休招月 시냇가에서 병에 물 뜨다가 달바라기 그치고
烹茗?中罷弄花 찻종에 차 끓이다가 꽃 장난 그만두리
好去不須頻下淚 잘 가거라, 모름지기 자주 눈물 흘리지 말지니
老僧相伴有烟霞 노승의 벗이야 안개와 놀 있나니
― 김지장, 「산을 내려가는 동자를 보내며」, 『대동시선』

동자는 무슨 사연으로 깊은 산속에 들어가 노스님을 모시게 되었을까. 먹고살기 힘든 가정 형편이 동자를 산속으로 밀었을까. 적막한 산속에서 동자는 언제나 집 생각뿐이다. 시냇가에서 물을 긷다보면 하늘의 달이 동자의 손을 간지럽힌다. 병 속에 달을 담았건만 어느새 달은 다시 물 위에 떠서 시냇물과 함께 흔들리고 있다. 노스님을 위해 차를 달이다가 문득 눈을 들어보니 꽃이 벙싯거리며 장난을 걸어온다. 이 시에서 정말 절묘하게 쓰인 글자는 ‘休(쉬다, 멈추다)’ 자와 ‘罷(끝내다, 그만두다)’ 자다. 이 두 글자를 중심으로 앞부분에는 동자가 절에서 해야만 할 일들이 등장하고, 뒷부분에는 하던 일을 작파한 동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 책의 지은이는 특히 말미에 주목한다. 내게는 아름다운 자연이 항상 친구로 남아 있으니 나를 위해 눈물 흘리지 말고 잘 가라는 말은 너무도 정겨우면서도 슬픈 어조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산중의 절을 떠나 다시 험난한 속세로 돌아가는 동자의 모습에서 노승이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그네가 그리는 고향

구도의 길이 힘들 때마다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면 누가 깨달음을 향해 매섭게 걸어가겠는가. 스스로 모든 가능성을 끊어버리고 기약 없는 깨달음만을 향해 매진하는 이들에게 고향은 하나의 망념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산대사 휴정의 시를 읽다보면 그 예상은 조금 빗나간다.

一行兒女窺窓紙 계집아이들 창틈으로 엿보고
鶴髮?翁問姓名 흰머리 이웃 노인 이름을 묻네
乳號方通相泣下 갓난아기 때 이름 대니 그제야 알고 서로 울다
碧天如海月三更 바다처럼 푸른 하늘에 달이 뜬 삼경
― 휴정, 「고향에 돌아가서」, 『청허당집』

스님이 어려서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찾은 것은 서른다섯 살 때였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그로서는 고향이 부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양부모 밑에서 계속 공부를 해서 열다섯에 성균관 진사시에 응시했다가 낙방하고는 그길로 지리산으로 달려가 출가하고 만다. 다시 찾은 고향산천. 낯선 나그네의 출현에 마을길을 뛰놀던 계집아이들은 방으로 숨듯이 뛰어들어가서 창문 종이에 구멍을 내고 훔쳐본다. 계집아이들의 왁자한 소리가 일시에 사라지면서 빚어지는 묘한 고요와 긴장. 세월이 흘러 다 큰 장년으로, 그것도 승복을 걸치고 갑자기 나타나니 이웃집 노인도 몰라보는 게 당연하다. 노인은 이제 학처럼 희디흰 노인으로 변해 있다. 노인이 낯선 스님에게 누구시냐고 묻자, 스님은 젖먹이 적 이름을 댄다. 그제야 노인은 그를 알아보고, 서로 붙잡고 한바탕 눈물을 흘린다. 여기에서 ‘방(方)’은 ‘바야흐로’라는 뜻으로 쓰였는데, 이 글자를 기점으로 해서 노인과 스님은 낯선 관계에서 세월을 거슬러 하나가 된다고 지은이는 해석한다.

눈 내린 날 아침의 소회

이 책에서는 눈 내린 날 아침의 느낌을 표현한 시도 돋보인다. 고려 말에 익재 이제현은 당대 최고의 문인 학자들과 교유하면서 사유의 폭을 넓혔다. 추운 겨울, 암자에 묵게 된 작중 화자는 추위로 잠을 못 이루었던 듯하다. 한밤 내내 켜놓았던 등불이 가물가물한데 밤이 새도록 사미승이 종을 치지 않는다는 관찰은, 그만큼 이제현이 아침을 기다렸음을 함축하고 있다.

紙被生寒佛燈暗 홑이불엔 찬 기운 나고 등불은 어둑한데
沙彌一夜不鳴鐘 사미승 한밤 내내 종 울리지 않는다
應嗔宿客開門早 나그네 일찍 문 연다 응당 성내겠지만
要看庵前雪壓松 암자 앞 눈에 눌린 소나무는 보아야겠지
― 이제현, 「산속 눈 내리는 밤」, 『익재난고』

종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하늘이 희뿌윰해지자마자 작중 화자는 즉시 문을 열어젖힌다. 사미승이야 속세의 나그네가 드물게 보는 산속 경치에 반해서 일찍부터 설쳐댄다고 화를 낼 법하지만, 작중 화자의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다. 암자 앞 눈에 눌린 소나무를 보려고 뛰쳐나온 것이다. 이 시에서는 홑이불을 덮고 추위에 떠는 모습이 생생하고도 짧게 묘사된 것이라든지, 나그네와 사미승의 기묘한 신경전을 잘 그리고 있다든지, 밖의 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추운 밤을 견디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이 그려지고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마지막 결구가 압권이라면서, ‘壓(누를 압)’ 자가 주는 두툼한 무게와, 그것을 견디고 있는 소나무의 자세에서, 활을 쏘기 위해 잔뜩 시위를 당겨놓은 상태와 같은 팽팽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고 풀이한다.

▣ 작가 소개

저 : 김풍기
강원도 강릉 인근의 산골에서 태어났다. 촌놈이지만 좋은 책을 읽는 것이 삶의 행복 중에 하나라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그런 삶을 살려고 애를 썼다. 강원대학교를 졸업하고 국어 교사로 살아가던 중 우연히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그곳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는 동안 좋은 스승과 선배, 벗들을 만났다. 그 공부가 송광사의 어른들과 수유연구실을 만나면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지금의 공부길에 좋은 길잡이가 되었다. 한국 고전문학과 한시를 통해서 다양한 사유의 흐름을 만났고, 몇 권의 책을 썼다. 새로운 고전의 탄생이라든지 번역 문제, 근대 이전 사람들의 일상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는 일 등에 관심을 가지고 계속 공부하는 중이다. 2013년 현재는 강원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조선 전기 문학론 연구』(1996, 태학사), 『한국 고전시가 교육의 역사적 지평』(2002, 월인), 『옛시 읽기의 즐거움』(2002, 아침이슬), 『시마(詩魔): 저주받은 시인들의 벗』(2002, 아침이슬), 『옛시와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2004, 해토), 『강원 한시의 이해』(2006, 집문당), 『삼라만상을 열치다』(2006, 푸르메), 『조선 지식인의 서가를 탐하다』(2009, 푸르메), 『옛시에 매혹되다』(2011, 푸르메), 『독서광 허균: 17세기 조선문화사의 한 국면』(2013, 그물)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옥루몽』 전5권(2006, 그린비),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 하(공역, 2008, 그린비)『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상,하』(2013, 북드라망, 개정 )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개정판 서문: 고단한 일상을 견디는 힘

1부 모름지기 자주 눈물 흘리지 말지니

이별의 따스함에 대하여: 김지장의 「산을 내려가는 동자를 보내며」
부끄러움과 그리움 사이에서: 휴정의 「고향에 돌아가서」, 김정의 「마음을 풀어내다」
고향으로 돌아가기: 부휴선수의 시 몇 편
사라짐에 대하여: 취미수초의 「의상대」
꽃송이 하나에 우주를 담고 있지만: 임억령의 「자방에게」
죽음, 거품 같은 안식에 대하여: 이지천, 이명한, 임탄의 시
솔잎 향 가득했던 추석 전날: 최영년의 『해동죽지』를 읽으며
편지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장적의 「가을 생각」, 박순의 「조처사의 산속 집을 방문하다」

2부 진흙소가 바다로 들어가 아득해지니

어디 장쾌한 일 좀 없을까: 정약용의 「이 또한 장쾌하지 아니한가」
한낮, 고적함의 중심에서: 기대승, 성운의 시
깊이에서 우러나는 매끄러움: 박수량의 「경포대에 올라서」, 윤황의 「백운대에서」
배꽃을 다루는 방식: 이개의 「배꽃」, 송한필의 「우연히 읊다」
여름의 초입에 읽는 겨울 한시: 원감충지의 시
누추함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임영의 「산재의 달밤」, 윤휴의 「누추한 골목」
무욕의 깊은 근원을 찾아서: 제월경헌의 「문도들에게 보이다」, 「임종게」
무욕과 한가함, 생활의 재발견: 환성지안의 「청평사에서」
끝없는 우주 한가운데, 깨어 있는 정신: 풍계명찰의 「한계사」
깊은 밤, 창밖에 눈 내리는 소리 들리고: 유장경, 유종원, 이제현의 시

3부 진실된 경계

아름다움의 허망함: 백운경한의 「낙가산으로 사람을 보내며」
언어의 저편: 익장의 「낙산사」
언어와 침묵의 경계에서: 영허선영의 「춘천 청평사에서」
세계의 틈과 사물의 경계: 한용운의 한시
떨림의 미학: 허응당의 「망고대에 올라서」, 「청평잡영」
슬픈 봄날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이규보의 「계림자의 집에서 술을 마시며」
설악산 옛길에서: 김창흡의 「한계폭」

4부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

인간의 새벽과 역사의 새벽: 서거정의 「일찍 일어나서」, 진화의 「사신으로 금나라에 들어가며」
시비를 가리는 진정한 길: 허후의 「시비의 노래」, 정두경의 「전원에서」
근심과 화평의 경계선에서: 김시습의 「소향정에 올라서」
가슴속 시퍼런 칼 한 자루: 가도의 「검객」, 일선의 「임종게」
세고(世苦)를 잠시 놓고: 김시습의 「청평산 세향 남창에서」
유자로서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이인로의 한시 몇 편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삶인가: 김종직의 한시 네 편

초판 서문: 한시 속에 담은 그리운 기억들

작가 소개

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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