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두 원본이 발견된 의의는 크다. 전집에 누락되어 있던 시를 보충하고 오탈자를 고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도 1950년에 행방불명이 된 이광수가 그 전해인 1949년에 어떤 심경으로 살고 있었던가를 『내 노래 上』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광수는 1949년 2월 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체포되어 3월 4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이광수의 친필 시첩을 읽어 내려가면 많은 답들을 얻을 수 있다. 척척 써 내려간 듯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많은 회한과 깨달음과 번뇌가 담겨 있다. 당당하게 남 앞에 내놓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만은 솔직하고 싶었던 심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시들이 이광수를 대신한다. 하루에도 몇 편씩 시를 쓰거나 제목도 붙이지 못한 채 써 내려간 시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 수정의 흔적들은 털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절박한 심경,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간직하고 훗날을 기약이라도 하듯이 직접 시첩 형태로 만들어 보관했던 마음….
이 자료집은 이광수가 발표하지 못했던 미발표 시첩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시첩’ 그 자체로 읽혀지길 바란다. 그래야 당시 발표하지 못했던 이광수의 심경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지금이라도 발표하게 된 것에 대한 기쁨과 소중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이광수
호는 춘원(春園). 1892년 3월 4일 평북 정주 출생으로 일찍이 11세에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랐으며,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인『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 ·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34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개척자』,『선도자』,『재생』,『마의태자』,『단종애사』,『군상』,『흙』,『유정』,『이순신』,『그 여자의 일생』,『이차돈의 사』,『그의 자서전』,『사랑』,『원효대사』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가, 수필, 논문,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몽주의 문학을 통하여 브나로드 운동 등 사회개혁 활동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가 자강도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이 시기의 장편 『무정』(1917)은 우선 시제의 정확한 구별과 새롭고 의욕적인 문체 등으로 형식 면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획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전의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과 성격을 실감나게 그렸고, 사회현실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입장에서 자유결혼 및 근대적 자아각성의 문제 제기를 통해 전통적 인습·윤리를 반대하고, 신교육·신문명을 통한 자강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인식의 결여는 『무정』을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로의 평가를 유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광수는 『단종애사』(1928~29)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소설을 발표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이며,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이 어려워지자 현실적인 소재보다 역사소설의 비유적 기능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항의하려는 역사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인 『이순신』(1931~32)·『이차돈의 사』(1935~36)·『공민왕』(1937) 등은 옛 것을 재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를 대중화한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고주의에 흘러 당대 현실에 대응한 실현적 관심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광수의 대표적 평론은 초기의 『문학의 가치』(1910)· 『문학이란 하(何)오』(1916)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를 드러낸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그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 ''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논설은 항상 세?의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편 자 소 개
하타노 세츠코(波田野 節子)
현립니가타대학 명예교수
저서: 『李光洙―韓?近代文?の祖と「親日」の烙印』(中公新書, 2016), 『일본유학생작가 연구』(소명출판, 2011), 『‘무정’을 읽는다: ‘무정’의 빛과 그림자』(소명출판, 2008) 등
역서: 『無情』(平凡社, 2005), 『金東仁作品集』(平凡社, 2011) 등
심원섭(沈元燮)
도쿄대학 국제교양학부 특임교수
저서: 『원본 이육사 전집』(집문당, 1986),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공편, 민음사, 1999), 『일본 유학생 문인들의 대정·소화 체험』(소명출판, 2009), 『아베 미츠이에와 조선: 구마모토·국민신문·경성일보시대』(소명출판, 2017) 등
역서: 『김사량 평전』(문학과지성사, 2000) 등
이유진(李侑珍)
사이타마여자단기대학 전임강사.
저서: 『異文化から?ぶ文章表現塾』(공저, 新水社, 2016) 등
논문: 「李光洙の「元曉大師」?究」(2002), 「植民地期朝鮮人作家の二重言語意識と文??究」(2004), 「植民地期朝鮮文?テクストにおける日本語使用の?相」(2008), 「李光洙の「改造論」の意味の再考察」(2016) 등
▣ 주요 목차
자료집을 펴내며
해제
이광수의 세 시집 『삼인시가집』, 『춘원시가집』, 『시집 사랑』
해방 전후기 이광수의 내면 풍경/21
시와 해설
내 노래
모르는 은혜 福 病든 乞人 (門)
(淸淨行)
내 노래 上
피아노 소리 기츰 세상 한 아궁이
왜 따끔령 사랑 高麗磁器
개피떡 무서운 날 (無題) 사랑
간수 기러기 因果應報 (因果)
임 임이름 草翁 柳樹人從江南來訪
(자비를 잃은 마음) 和平 셋재 싸옴 진달레
그 나무 왜 꺾나 오랑캐꽃 완전 요새
광경 소원 卽興 折枝
의지 두 마음 나(1) 나(2)
안해의 설교 이야기 서로 가는 봄
무슨 원? 시골 풍경 사랑과 미움 안락
나라 타령 과년 정도령 사랑
마음 저 해를 바라보니 왜 사나 解放
(왜들 싸우시오) (살기 좋은 세상) (支配者) 구데기와 개미
묵은 꽃씨 잘살 수 있는 나라 法華經 하나님
나 제목 없음
친필 시첩 원본
『내 노래』
『내 노래 上』
후기
이광수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두 원본이 발견된 의의는 크다. 전집에 누락되어 있던 시를 보충하고 오탈자를 고칠 수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도 1950년에 행방불명이 된 이광수가 그 전해인 1949년에 어떤 심경으로 살고 있었던가를 『내 노래 上』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광수는 1949년 2월 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으로 체포되어 3월 4일 보석으로 석방되었다.)
이광수의 친필 시첩을 읽어 내려가면 많은 답들을 얻을 수 있다. 척척 써 내려간 듯이 보이지만 그 속에는 많은 회한과 깨달음과 번뇌가 담겨 있다. 당당하게 남 앞에 내놓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게만은 솔직하고 싶었던 심경을 고스란히 담아낸 시들이 이광수를 대신한다. 하루에도 몇 편씩 시를 쓰거나 제목도 붙이지 못한 채 써 내려간 시들, 썼다가 지우고 다시 쓴 수정의 흔적들은 털어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절박한 심경,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간직하고 훗날을 기약이라도 하듯이 직접 시첩 형태로 만들어 보관했던 마음….
이 자료집은 이광수가 발표하지 못했던 미발표 시첩이라는 것을 상기하며 ‘시첩’ 그 자체로 읽혀지길 바란다. 그래야 당시 발표하지 못했던 이광수의 심경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지금이라도 발표하게 된 것에 대한 기쁨과 소중함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이광수
호는 춘원(春園). 1892년 3월 4일 평북 정주 출생으로 일찍이 11세에 부모를 잃고 고아로 자랐으며, 14세 때 일진회 유학생으로 도일하여, 메이지 중학부에서 공부하면서 소년회(少年會)를 조직하고 <소년>지를 발행하는 한편 시와 평론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와세다대학 철학과에 입학, 1917년 1월 1일부터 한국 신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인『무정』을 연재했다.
1919년 도쿄 유학생의 2 ·8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참가하여 독립신문사 사장을 역임했다. 192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편집국장을 지내고, 1933년조선일보 부사장을 거치는 등 언론계에서 활약했고,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보석된 뒤부터 본격적인 친일 행위를 했다.1939년에는 친일어용단체인 조선문인협회 회장이 되었으며 가야마 미쓰로라고 창씨개명을 하였다. 8 ·15광복 후 반민법으로 구속되었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했으나 6 ·25전쟁 때 납북되었다.
34년 동안 작가로 활동하면서『개척자』,『선도자』,『재생』,『마의태자』,『단종애사』,『군상』,『흙』,『유정』,『이순신』,『그 여자의 일생』,『이차돈의 사』,『그의 자서전』,『사랑』,『원효대사』등 60여 편의 소설과 시가, 수필, 논문, 평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몽주의 문학을 통하여 브나로드 운동 등 사회개혁 활동을 북돋우기도 하였다. 일제 시대 그의 친일 행각에 대한 논란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납북되었다가 자강도에서 병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문학은 50년이라는 지속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소설 외에도 시가·평론·수필 등 전영역에 걸친 방대한 규모를 드러냈다. 그러나 주류는 역시 소설이며 더불어 문학사적 가치를 1차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1910년대 계몽주의 소설들이다. 이 시기의 장편 『무정』(1917)은 우선 시제의 정확한 구별과 새롭고 의욕적인 문체 등으로 형식 면에서 근대소설로서의 획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특히 이전의 신소설과 달리 당대인들의 삶과 성격을 실감나게 그렸고, 사회현실에 대응하는 젊은 지식인의 내면세계를 잘 그려냈다는 점에서 근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한 시대적 이념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 계몽주의 입장에서 자유결혼 및 근대적 자아각성의 문제 제기를 통해 전통적 인습·윤리를 반대하고, 신교육·신문명을 통한 자강주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이 작품에 나타난 추상적 계몽주의, 식민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역사적 인식의 결여는 『무정』을 진정한 의미의 근대소설로의 평가를 유보하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무정』과 같은 계몽소설의 연장에 놓이는 『흙』은 농촌계몽소설로서, 브나로드 운동 등의 민족적 교화운동의 일환에서 나온 작품이다. 이광수의 농촌현실에 대한 관심은 이보다 앞선 1916년 『매일신보』에 발표한 『농촌계발』이라는 논문에서 발견되는데, 그는 이 글에서 우리 농촌의 결점 중의 하나로 ''교육이 없음''을 지적하며 선각자적 지식인이 농촌계발에 앞장서야 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정신에서 나온 『흙』은 농민과의 정신적 연대성이 고조되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며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신분(변호사)을 버리고 농촌으로 돌아가는 이상적인 지식인으로 그려진다. 한편 이광수의 작품 중 상당수가 남녀의 애정을 다루고 있는데 『유정』(1933)·『그 여자의 일생』(1934~35)·『사랑』(1938) 등에 나타난 남녀간의 애정은 통속적인 애정소설과는 달리 정신적인 이상주의를 지향하는 특유한 성격을 지닌다.
이광수는 『단종애사』(1928~29)를 포함한 다수의 역사소설을 발표해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충분히 발휘했다. 그가 역사소설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 후반이며, 일제에 대한 직접적인 대항이 어려워지자 현실적인 소재보다 역사소설의 비유적 기능을 빌려 현실을 비판하고 이에 항의하려는 역사소설을 쓴 것으로 보인다. 대표작인 『이순신』(1931~32)·『이차돈의 사』(1935~36)·『공민왕』(1937) 등은 옛 것을 재현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역사를 대중화한 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복고주의에 흘러 당대 현실에 대응한 실현적 관심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이광수의 대표적 평론은 초기의 『문학의 가치』(1910)· 『문학이란 하(何)오』(1916) 등을 들 수 있다. 이는 한국 최초의 본격적 평론이라 할 수 있으나 명확한 문학관에 입각하여 하나의 문학적 주의를 이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서구 문학의 여러 주의를 체계 없이 나열한 한계를 드러낸다. 초기의 잡다한 주의들은 그후 톨스토이 예술론의 영향 아래 공리주의 내지 계몽주의에 뿌리를 내렸고 이후의 문학론들은 대개가 ''인생을 위한 예술'' 및 ''도덕과 예술의 일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모아졌다. 그래서 그의 논설은 항상 세?의 주목이 되었고 당시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다.
편 자 소 개
하타노 세츠코(波田野 節子)
현립니가타대학 명예교수
저서: 『李光洙―韓?近代文?の祖と「親日」の烙印』(中公新書, 2016), 『일본유학생작가 연구』(소명출판, 2011), 『‘무정’을 읽는다: ‘무정’의 빛과 그림자』(소명출판, 2008) 등
역서: 『無情』(平凡社, 2005), 『金東仁作品集』(平凡社, 2011) 등
심원섭(沈元燮)
도쿄대학 국제교양학부 특임교수
저서: 『원본 이육사 전집』(집문당, 1986), 『사진판 윤동주 자필 시고전집』(공편, 민음사, 1999), 『일본 유학생 문인들의 대정·소화 체험』(소명출판, 2009), 『아베 미츠이에와 조선: 구마모토·국민신문·경성일보시대』(소명출판, 2017) 등
역서: 『김사량 평전』(문학과지성사, 2000) 등
이유진(李侑珍)
사이타마여자단기대학 전임강사.
저서: 『異文化から?ぶ文章表現塾』(공저, 新水社, 2016) 등
논문: 「李光洙の「元曉大師」?究」(2002), 「植民地期朝鮮人作家の二重言語意識と文??究」(2004), 「植民地期朝鮮文?テクストにおける日本語使用の?相」(2008), 「李光洙の「改造論」の意味の再考察」(2016) 등
▣ 주요 목차
자료집을 펴내며
해제
이광수의 세 시집 『삼인시가집』, 『춘원시가집』, 『시집 사랑』
해방 전후기 이광수의 내면 풍경/21
시와 해설
내 노래
모르는 은혜 福 病든 乞人 (門)
(淸淨行)
내 노래 上
피아노 소리 기츰 세상 한 아궁이
왜 따끔령 사랑 高麗磁器
개피떡 무서운 날 (無題) 사랑
간수 기러기 因果應報 (因果)
임 임이름 草翁 柳樹人從江南來訪
(자비를 잃은 마음) 和平 셋재 싸옴 진달레
그 나무 왜 꺾나 오랑캐꽃 완전 요새
광경 소원 卽興 折枝
의지 두 마음 나(1) 나(2)
안해의 설교 이야기 서로 가는 봄
무슨 원? 시골 풍경 사랑과 미움 안락
나라 타령 과년 정도령 사랑
마음 저 해를 바라보니 왜 사나 解放
(왜들 싸우시오) (살기 좋은 세상) (支配者) 구데기와 개미
묵은 꽃씨 잘살 수 있는 나라 法華經 하나님
나 제목 없음
친필 시첩 원본
『내 노래』
『내 노래 上』
후기
이광수에게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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