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李德懋)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인물을 들면서 덕(德)으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전략(戰略)으로는 충무공 이순신, 절의로는 청음 김상헌을 꼽았다. 청음은 어떠한 삶을 살고 어떻게 절의를 지켰기에 후인들에게 이처럼 존경과 흠모를 받았던 것일까?
인조 14년(1636)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40년도 채 안 되어 일어난 이 전쟁에서 조선은 월등한 군사력을 가진 청나라 군대의 공세에 두 달도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다. 이 패배로 인조는 청나라 태종 앞에 나아가 굴욕적인 맹약(盟約)을 맺고 신하가 되었다. 이때 항복을 반대하고 결사 항전을 주장했던 척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청음 김상헌이다.
척화파라 하면 흔히 명분에만 집착하고 현실을 도외시하여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답답한 인물을 떠올린다. 척화파가 사대주의·중화주의라는 명분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보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다만 척화파가 모두 명분만을 중시하고 현실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김상헌은 화친을 주장한 주화파 못지않게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김상헌과 주화파의 차이는 현실 인식이 아니라 현실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었다. 남한산성으로 몽진한 인조에게 김상헌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형세는 화친으로 적을 물리쳐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부터 전쟁도 치르지 않고 화친이 제대로 맺어진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적들의 욕심이 끝이 없는데 어떻게 전투에 대비하지 않고 화친에만 의존하겠습니까. 성을 지키는 병사를 나누어 배치하고 여러 도의 근왕병(勤王兵)이 모이는 사이에 우선 적병을 묶어 두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적의 수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화친을 청하기만 하고 방비를 하지 않는다면, 적은 우리나라가 허둥대며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기세를 올려 곧바로 대군을 보낼 것입니다. 지금 계책을 세움에 우리 쪽에서 반드시 싸우겠다는 태세를 보여 주어야 적이 부담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일 -「연보」의 기록」 중에서
김상헌이 무조건적으로 항전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화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전투에 대비하지 않고 화친만 청하는 것은 오히려 적의 사기를 북돋아 상황을 불리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인조는 무기력하게 항복을 선언하고 만다. 이후의 역사는 김상헌이 예상했던 대로 굴욕적이고 고통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피상적이고 단편적이기 쉽다. 그러나 어떤 인물의 두드러진 면만 부각시켜 보아서는 그의 전체 면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김상헌 같은 경우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지은 시가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져 칭송을 받고 시 선집에 수록될 정도로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러나 척화파, 사대주의, 항전 주장 등 몇 개의 키워드에 가려져 오늘날 김상헌을 시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상헌의 문집 『청음집』에는 김상헌과 그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 낸 방대한 양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청음집』을 통해 우리는 피상적, 단편적으로 이해했던 그의 인물 면모와 당시 역사 현장을 좀 더 구체적,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구체적인 상황은 달라도 역사의 길 위에서 비슷한 양상은 늘 반복된다. 과거 역사 속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처리했던 과정들을 통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
이 선집은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상헌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모은 마지막 장을 제외한 나머지 10개의 장은 김상헌의 삶의 궤적을 따라 시기별로 구분한 것이다. 시기별로 주요 작품을 정선(精選)하여 번역하고, 각 작품 뒤에 작품을 짓게 된 배경 등을 설명한 평설을 실어 작품 이해를 도왔다.
1장에는 김상헌이 38세 때까지 지은 작품을 모았다. 이 시기의 청음은 계속해서 전국을 떠돌았다. 20대 초반에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난을 다녔고, 이후 관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차례 지방관으로 나가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30대에는 당시 조정의 실세였던 유영경의 미움을 받아 조정에 있지 못하고 고산도, 경성 등 북쪽 변방의 지방관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2장에는 39세부터 53세 때까지 지은 작품을 모았다. 39세 때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김상헌은 조정으로 복귀하였으나, 광해군의 뜻을 거슬러 다시 지방관으로 나갔다. 이때 이이첨 일파가 꾸민 김제남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은거하는 중에 스승인 윤근수와 어머니의 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3장에는 54세 때 인조반정의 주역 김류에게 보낸 편지와, 55세 때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된 뒤 임금에게 올린 차자를 수록했다. 인조반정 이후 혼란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조정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4장에는 57세 때 김상헌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도중에 보고 들은 사실이나 만난 사람, 방문한 유적지 등에 대한 감상을 읊은 시를 모은 『조천록』에 수록된 작품을 실었다. 『조천록』에 있는 작품들은 당대 뿐 아니라 왕사정(王士禎)과 같은 후대의 중국 문인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5장에는 명나라에서 사신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58세 때부터 병자호란 발발 직전인 67세 때까지의 작품을 모았다. 이 시기에 김상헌은 조정에서 도승지, 홍문관 제학, 대사헌, 예조 판서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국정을 성실하게 보좌하는 한편, 점차 강성해지는 청나라에 대한 대비를 강화할 것을 누차 건의하였다.
6장에는 병자호란 발발 직후 김상헌의 남한산성에서의 행적을 연보와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과, 항복 이후 풍산의 학가산에 머물며 지은 작품을 수록했다. 척화파의 영수로서 결사 항전을 주장한 김상헌의 절의와, 남한산성에서 대응책을 강구하던 조정의 급박한 분위기를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7장에는 71세 때 지은 작품을 모았다. 이해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려 하면서 조선에 원병을 요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상헌은 조선의 출병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청나라는 김상헌을 요동의 심양으로 압송하라고 통보해 왔다. 조정의 명을 받은 김상헌은 풍산을 출발하여 서울을 거쳐 심양으로 가서 북관에 갇혔다.
8장에는 김상헌이 심양의 북관에 처음 갇힌 72세 때부터 세자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온 76세 때까지의 작품을 모았다. 타국에 억류된 채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세월을 보내는 늙은 선비의 애달픈 심정과 그런 상황에서도 식지 않은 충절을 엿볼 수 있다.
9장에는 심양의 북관에 함께 갇혀 있던 최명길과 주고받은 시만을 따로 모았다. 주화파의 영수인 최명길이 명나라와 내통한 사실이 발각되어 심양으로 끌려와 북관에 구금되어 있을 때, 두 사람은 자신들의 감회를 읊은 시를 지어 주고받았다.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은 서로를 점차 이해하게 되어 지난날의 반목과 질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0장에는 심양의 감옥에서 풀려나 조선으로 돌아온 뒤부터 83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은 작품을 모았다. 이 시기에 조정에서는 김상헌에게 계속해서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김상헌은 번번이 사직 상소를 올려 거절하고 양주의 석실에 은거하였다. 효종 즉위 후 좌의정에 제수되어 다시 조정으로 들어갔으나, 자신이 조정에 있으면 청나라의 위협이 계속되리라 판단하여 다시 석실로 돌아갔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11장에는 김상헌에 대한 당대와 후대의 평가를 담은 기록을 모았다. 여기에는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지은 제문·묘지명뿐 아니라, 현종·영조·정조 등 임금이 내린 교서와 제문도 포함되어 있어 김상헌의 역사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
이 밖에, 서두에는 해제를 실어 김상헌의 삶을 요약하여 서술하였고, 말미에는 연보를 첨부하여 김상헌의 삶의 행적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 작가 소개
김상헌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척화파의 영수로서 병자호란 때 항복을 반대하고 항전을 주장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을 요구하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중국 심양으로 압송되었다. 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갖은 위협을 받으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6년 뒤에 풀려나 귀국하였다.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숭명배청 (崇明排淸)의 상징적 인물로서 조선 후기 북벌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주요 목차
한국고전선집을 펴내며 4
김상헌은 누구인가 15
제 1 장 땅끝으로 떠돌다
길가에 있는 무덤 27
홍도와 벽도 28
가을날의 회포 29
객지에서 가을을 맞다 31
이성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을 전송하다 33
제주도로 부임하던 도중 비를 만나 공주에 머물다 34
여산으로 가는 도중에 읊다 36
해남의 객관에서 순풍을 기다리다 38
정의현 객사에서 40
제주에 있는 충암의 사당에 올린 제문 42
도산초당의 밤비 45
길을 가는 도중에 날씨가 갠 것을 기뻐하다 47
아침에 늦게 일어나다 49
정양사에서 비를 만나 묵다 51
홍원의 객사에서 53
마천령을 넘어서 임명역에서 묵다 55
사월이 되어서야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듣다 57
축석령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다 58
선죽교에서 느낌이 있어 읊다 59
제 2 장 석실로 돌아가다
호당에서 비가 온 뒤에 짓다 65
유학의 정통을 지키다 67
봄이 다 지나가다 72
월정 선생을 곡하다 74
고향에 돌아가고파 78
제 3 장 다시 조정으로 나아가다
북저 김 판서에게 답하는 편지 85
사간원에 있으면서 여덟 가지 조짐에 대해 올린 차자 89
구원병을 보내 달라고 중국에 요청한 글 93
제 4 장 문명(文名)을 드날리다
신안에서 만난 보졸의 노래 103
선사포에서 106
바다 신에게 제사하는 글 108
장산도에서 사흘 동안 바람에 막혀 머무르다 112
등주에서 국화를 보고 느낌이 있어서 113
등주에서 한밤중에 앉아 있다가 딱따기 치는 소리를 듣다 115
중국 사람 오청천의 시에 차운하다 117
청천 오대빈에게 화답하다 119
안평중이 살았던 옛 마을을 지나며 122
제남을 떠나면서 124
북경에 들어가다 126
옥하관에서 128
섣달 그믐날 밤의 나그네 회포 130
한식 132
청명 133
제 5 장 나랏일에 온 마음을 다하다
강홍립의 관작을 회복시키지 말라고 청한 계사 139
중국의 물화를 오랑캐에게 주지 말기를 청한 차자 141
은계역에서 144
어디에 있을 때 술을 잊지 못할까 145
청평산으로 들어가다 147
청평산 골짜기를 나오다 148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를 청한 차자 150
청백리의 선발에서 빼 주기를 청한 상소 154
전원으로 돌아가다 157
여강에서 상주로 부임하는 동생 중정과 이별하면서 159
제 6 장 국서(國書)를 찢고 통곡하다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일 - 「연보」의 기록 165
나의 큰형님 우의정 선원 선생의 행장 181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래 186
행년 188
자신에 대해 해명하다 190
밤중에 일어나 홀로 걷다 193
제 7 장 대절(大節)을 빛내다
명나라를 치기 위한 군대를 파견하지 말기를 청한 상소 199
수재 김희진에게 주다 206
인조가 서찰과 가죽옷을 보내준 데 대해 사은하는 상소 208
손자 수증 형제에게 부치는 편지 211
압록강을 건너면서 학곡 홍서봉에게 남겨 주다 213
섣달 그믐날 밤을 새우면서 215
제 8 장 감옥에서 고초를 겪다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짓다 221
봄에게 묻다 222
어린아이들이 물을 긷는 것을 슬퍼하다 224
등불 앞에서 225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읊다 226
의주로 돌아오다 227
의주에 도착하여 연명으로 올린 상소 229
의주에서 생일을 맞아 읊다 232
압록강에서 작별하면서 읊다 233
감회를 읊다 235
명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다 237
맹영광에게 남겨 주다 239
표정준에게 지어 주다 241
제 9 장 정적(政敵)과 화해하다
시를 통해 대화하다 247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다 252
상대방을 이해하다 254
서로 자신의 뜻을 말하다 258
경도와 권도를 논하다 263
제 10 장 대로(大老)로 존숭받다
고국으로 돌아와 성문 밖에 머물러 있으면서 올린 상소 271
사정을 진술하는 상소 273
한밤중에 일어나 읊다 277
송시열에게 보낸 편지 278
임금이 의원과 약물을 내려 준 것에 대해 사례하다 280
죽은 뒤에 올린 상소 281
자손에게 남긴 유언 284
청음 자신이 지은 묘지명 286
제 11 장 별이 되어 빛나다
청음에 대한 사신(史臣)의 논평 293
우암 송시열이 지은 만사 295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올린 제문 297
우암 송시열이 지은 청음의 묘지명 301
북관행 305
효종 대왕의 묘정에 배향하면서 내린 교서 307
영조가 현절사(顯節祠)에 치제하면서 내린 제문 309
정조(正祖)가 지은 청음에 대한 제문 311
연보 315
조선 후기 학자 이덕무(李德懋)는 우리나라에서 제일가는 인물을 들면서 덕(德)으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전략(戰略)으로는 충무공 이순신, 절의로는 청음 김상헌을 꼽았다. 청음은 어떠한 삶을 살고 어떻게 절의를 지켰기에 후인들에게 이처럼 존경과 흠모를 받았던 것일까?
인조 14년(1636)에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40년도 채 안 되어 일어난 이 전쟁에서 조선은 월등한 군사력을 가진 청나라 군대의 공세에 두 달도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다. 이 패배로 인조는 청나라 태종 앞에 나아가 굴욕적인 맹약(盟約)을 맺고 신하가 되었다. 이때 항복을 반대하고 결사 항전을 주장했던 척화파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청음 김상헌이다.
척화파라 하면 흔히 명분에만 집착하고 현실을 도외시하여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답답한 인물을 떠올린다. 척화파가 사대주의·중화주의라는 명분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보면 완전히 잘못된 생각은 아니다. 다만 척화파가 모두 명분만을 중시하고 현실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김상헌은 화친을 주장한 주화파 못지않게 현실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김상헌과 주화파의 차이는 현실 인식이 아니라 현실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었다. 남한산성으로 몽진한 인조에게 김상헌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형세는 화친으로 적을 물리쳐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부터 전쟁도 치르지 않고 화친이 제대로 맺어진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적들의 욕심이 끝이 없는데 어떻게 전투에 대비하지 않고 화친에만 의존하겠습니까. 성을 지키는 병사를 나누어 배치하고 여러 도의 근왕병(勤王兵)이 모이는 사이에 우선 적병을 묶어 두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적의 수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화친을 청하기만 하고 방비를 하지 않는다면, 적은 우리나라가 허둥대며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을 보고 기세를 올려 곧바로 대군을 보낼 것입니다. 지금 계책을 세움에 우리 쪽에서 반드시 싸우겠다는 태세를 보여 주어야 적이 부담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일 -「연보」의 기록」 중에서
김상헌이 무조건적으로 항전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화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만 전투에 대비하지 않고 화친만 청하는 것은 오히려 적의 사기를 북돋아 상황을 불리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인조는 무기력하게 항복을 선언하고 만다. 이후의 역사는 김상헌이 예상했던 대로 굴욕적이고 고통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갔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피상적이고 단편적이기 쉽다. 그러나 어떤 인물의 두드러진 면만 부각시켜 보아서는 그의 전체 면모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김상헌 같은 경우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지은 시가 중국 전역에 널리 알려져 칭송을 받고 시 선집에 수록될 정도로 뛰어난 시인이었다. 그러나 척화파, 사대주의, 항전 주장 등 몇 개의 키워드에 가려져 오늘날 김상헌을 시인으로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김상헌의 문집 『청음집』에는 김상헌과 그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 낸 방대한 양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청음집』을 통해 우리는 피상적, 단편적으로 이해했던 그의 인물 면모와 당시 역사 현장을 좀 더 구체적,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구체적인 상황은 달라도 역사의 길 위에서 비슷한 양상은 늘 반복된다. 과거 역사 속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처리했던 과정들을 통해 현재 우리가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해결할 수 있는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
이 선집은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상헌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모은 마지막 장을 제외한 나머지 10개의 장은 김상헌의 삶의 궤적을 따라 시기별로 구분한 것이다. 시기별로 주요 작품을 정선(精選)하여 번역하고, 각 작품 뒤에 작품을 짓게 된 배경 등을 설명한 평설을 실어 작품 이해를 도왔다.
1장에는 김상헌이 38세 때까지 지은 작품을 모았다. 이 시기의 청음은 계속해서 전국을 떠돌았다. 20대 초반에는 임진왜란으로 인해 피난을 다녔고, 이후 관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여러 차례 지방관으로 나가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30대에는 당시 조정의 실세였던 유영경의 미움을 받아 조정에 있지 못하고 고산도, 경성 등 북쪽 변방의 지방관에 제수되기도 하였다.
2장에는 39세부터 53세 때까지 지은 작품을 모았다. 39세 때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김상헌은 조정으로 복귀하였으나, 광해군의 뜻을 거슬러 다시 지방관으로 나갔다. 이때 이이첨 일파가 꾸민 김제남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 파직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하였다. 은거하는 중에 스승인 윤근수와 어머니의 상을 당하기도 하였다.
3장에는 54세 때 인조반정의 주역 김류에게 보낸 편지와, 55세 때 사간원 대사간에 제수된 뒤 임금에게 올린 차자를 수록했다. 인조반정 이후 혼란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조정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다.
4장에는 57세 때 김상헌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도중에 보고 들은 사실이나 만난 사람, 방문한 유적지 등에 대한 감상을 읊은 시를 모은 『조천록』에 수록된 작품을 실었다. 『조천록』에 있는 작품들은 당대 뿐 아니라 왕사정(王士禎)과 같은 후대의 중국 문인들에게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5장에는 명나라에서 사신의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58세 때부터 병자호란 발발 직전인 67세 때까지의 작품을 모았다. 이 시기에 김상헌은 조정에서 도승지, 홍문관 제학, 대사헌, 예조 판서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며 국정을 성실하게 보좌하는 한편, 점차 강성해지는 청나라에 대한 대비를 강화할 것을 누차 건의하였다.
6장에는 병자호란 발발 직후 김상헌의 남한산성에서의 행적을 연보와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내용과, 항복 이후 풍산의 학가산에 머물며 지은 작품을 수록했다. 척화파의 영수로서 결사 항전을 주장한 김상헌의 절의와, 남한산성에서 대응책을 강구하던 조정의 급박한 분위기를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다.
7장에는 71세 때 지은 작품을 모았다. 이해에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려 하면서 조선에 원병을 요청했다. 이 소식을 들은 김상헌은 조선의 출병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고, 청나라는 김상헌을 요동의 심양으로 압송하라고 통보해 왔다. 조정의 명을 받은 김상헌은 풍산을 출발하여 서울을 거쳐 심양으로 가서 북관에 갇혔다.
8장에는 김상헌이 심양의 북관에 처음 갇힌 72세 때부터 세자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온 76세 때까지의 작품을 모았다. 타국에 억류된 채 언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세월을 보내는 늙은 선비의 애달픈 심정과 그런 상황에서도 식지 않은 충절을 엿볼 수 있다.
9장에는 심양의 북관에 함께 갇혀 있던 최명길과 주고받은 시만을 따로 모았다. 주화파의 영수인 최명길이 명나라와 내통한 사실이 발각되어 심양으로 끌려와 북관에 구금되어 있을 때, 두 사람은 자신들의 감회를 읊은 시를 지어 주고받았다. 그러는 사이에 두 사람은 서로를 점차 이해하게 되어 지난날의 반목과 질시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0장에는 심양의 감옥에서 풀려나 조선으로 돌아온 뒤부터 83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은 작품을 모았다. 이 시기에 조정에서는 김상헌에게 계속해서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김상헌은 번번이 사직 상소를 올려 거절하고 양주의 석실에 은거하였다. 효종 즉위 후 좌의정에 제수되어 다시 조정으로 들어갔으나, 자신이 조정에 있으면 청나라의 위협이 계속되리라 판단하여 다시 석실로 돌아갔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다.
11장에는 김상헌에 대한 당대와 후대의 평가를 담은 기록을 모았다. 여기에는 당대 최고의 문인들이 지은 제문·묘지명뿐 아니라, 현종·영조·정조 등 임금이 내린 교서와 제문도 포함되어 있어 김상헌의 역사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
이 밖에, 서두에는 해제를 실어 김상헌의 삶을 요약하여 서술하였고, 말미에는 연보를 첨부하여 김상헌의 삶의 행적을 좀 더 상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 작가 소개
김상헌
조선 중기의 정치가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척화파의 영수로서 병자호란 때 항복을 반대하고 항전을 주장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청나라가 명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출병을 요구하자 반대하는 소를 올렸다가 중국 심양으로 압송되었다. 옥에 갇혀 지내는 동안 갖은 위협을 받으면서도 절개를 굽히지 않다가 6년 뒤에 풀려나 귀국하였다. 명나라를 숭상하고 청나라를 배척하는 숭명배청 (崇明排淸)의 상징적 인물로서 조선 후기 북벌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 주요 목차
한국고전선집을 펴내며 4
김상헌은 누구인가 15
제 1 장 땅끝으로 떠돌다
길가에 있는 무덤 27
홍도와 벽도 28
가을날의 회포 29
객지에서 가을을 맞다 31
이성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을 전송하다 33
제주도로 부임하던 도중 비를 만나 공주에 머물다 34
여산으로 가는 도중에 읊다 36
해남의 객관에서 순풍을 기다리다 38
정의현 객사에서 40
제주에 있는 충암의 사당에 올린 제문 42
도산초당의 밤비 45
길을 가는 도중에 날씨가 갠 것을 기뻐하다 47
아침에 늦게 일어나다 49
정양사에서 비를 만나 묵다 51
홍원의 객사에서 53
마천령을 넘어서 임명역에서 묵다 55
사월이 되어서야 꾀꼬리 우는 소리를 듣다 57
축석령에서 도봉산을 바라보다 58
선죽교에서 느낌이 있어 읊다 59
제 2 장 석실로 돌아가다
호당에서 비가 온 뒤에 짓다 65
유학의 정통을 지키다 67
봄이 다 지나가다 72
월정 선생을 곡하다 74
고향에 돌아가고파 78
제 3 장 다시 조정으로 나아가다
북저 김 판서에게 답하는 편지 85
사간원에 있으면서 여덟 가지 조짐에 대해 올린 차자 89
구원병을 보내 달라고 중국에 요청한 글 93
제 4 장 문명(文名)을 드날리다
신안에서 만난 보졸의 노래 103
선사포에서 106
바다 신에게 제사하는 글 108
장산도에서 사흘 동안 바람에 막혀 머무르다 112
등주에서 국화를 보고 느낌이 있어서 113
등주에서 한밤중에 앉아 있다가 딱따기 치는 소리를 듣다 115
중국 사람 오청천의 시에 차운하다 117
청천 오대빈에게 화답하다 119
안평중이 살았던 옛 마을을 지나며 122
제남을 떠나면서 124
북경에 들어가다 126
옥하관에서 128
섣달 그믐날 밤의 나그네 회포 130
한식 132
청명 133
제 5 장 나랏일에 온 마음을 다하다
강홍립의 관작을 회복시키지 말라고 청한 계사 139
중국의 물화를 오랑캐에게 주지 말기를 청한 차자 141
은계역에서 144
어디에 있을 때 술을 잊지 못할까 145
청평산으로 들어가다 147
청평산 골짜기를 나오다 148
청나라의 침입에 대비하기를 청한 차자 150
청백리의 선발에서 빼 주기를 청한 상소 154
전원으로 돌아가다 157
여강에서 상주로 부임하는 동생 중정과 이별하면서 159
제 6 장 국서(國書)를 찢고 통곡하다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일 - 「연보」의 기록 165
나의 큰형님 우의정 선원 선생의 행장 181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래 186
행년 188
자신에 대해 해명하다 190
밤중에 일어나 홀로 걷다 193
제 7 장 대절(大節)을 빛내다
명나라를 치기 위한 군대를 파견하지 말기를 청한 상소 199
수재 김희진에게 주다 206
인조가 서찰과 가죽옷을 보내준 데 대해 사은하는 상소 208
손자 수증 형제에게 부치는 편지 211
압록강을 건너면서 학곡 홍서봉에게 남겨 주다 213
섣달 그믐날 밤을 새우면서 215
제 8 장 감옥에서 고초를 겪다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짓다 221
봄에게 묻다 222
어린아이들이 물을 긷는 것을 슬퍼하다 224
등불 앞에서 225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읊다 226
의주로 돌아오다 227
의주에 도착하여 연명으로 올린 상소 229
의주에서 생일을 맞아 읊다 232
압록강에서 작별하면서 읊다 233
감회를 읊다 235
명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다 237
맹영광에게 남겨 주다 239
표정준에게 지어 주다 241
제 9 장 정적(政敵)과 화해하다
시를 통해 대화하다 247
즐거웠던 때를 회상하다 252
상대방을 이해하다 254
서로 자신의 뜻을 말하다 258
경도와 권도를 논하다 263
제 10 장 대로(大老)로 존숭받다
고국으로 돌아와 성문 밖에 머물러 있으면서 올린 상소 271
사정을 진술하는 상소 273
한밤중에 일어나 읊다 277
송시열에게 보낸 편지 278
임금이 의원과 약물을 내려 준 것에 대해 사례하다 280
죽은 뒤에 올린 상소 281
자손에게 남긴 유언 284
청음 자신이 지은 묘지명 286
제 11 장 별이 되어 빛나다
청음에 대한 사신(史臣)의 논평 293
우암 송시열이 지은 만사 295
잠곡(潛谷) 김육(金堉)이 올린 제문 297
우암 송시열이 지은 청음의 묘지명 301
북관행 305
효종 대왕의 묘정에 배향하면서 내린 교서 307
영조가 현절사(顯節祠)에 치제하면서 내린 제문 309
정조(正祖)가 지은 청음에 대한 제문 311
연보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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