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관객은 이미 해방된 존재이다.” 추구되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전제되어야 할 정치적 원칙이다.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앎과 무지, 능동과 수동의 위치라는 전제에 대한 미학적 전복
예술가와 관객, 창작자/생산자와 향유자/소비자 사이 지적 불평등을 제거하려는 실천
교육, 정치, 문학, 영화, 미술 등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유하는 자리옮김의 철학자 랑시에르가 동시대 예술에 제기하는 ‘지적 해방’ ‘지적 능력의 평등’이라는 비판적 사유
1.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적 해방의 사유와 오늘날 관객에 관한 물음 사이에 아무런 뚜렷한 관계도 없다는 것이 또한 기회인 듯 보였다”
: 바르트가 말하는 저자의 죽음, 랑시에르가 말하는 관객의 해방 / 해방된 관객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출판사가 문학의 해석에 있어 엄정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든 문학은 해석하는 자의 자유와 역량 위에서 시시각각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제제는 출판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전시장에 가면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 라는 경고문을 보게 됩니다. 왜 손대지 말아야 할까요.”
“아이유 ‘제제.’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을 출판사가 독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 시대에 웬만큼 무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망발이죠.”
작년, 외국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모티프로 삼은 가수 아이유의 신곡 「제제」가 낳은 소아성애 논란을 둘러싸고 해당 출판사와 [그들 스스로 관객이기도 한] 한 작가[예술가] 및 두 비평가가 작품과 관객을 사이에 두고 SNS에서 벌인 설전이다.
수동적이며 무지하다고 전제되는 관객들 혹은 구경꾼들은 이 같은 설전에 대해, 작품과 자신들 사이를 ‘매개’하는 ‘스승’의 ‘설명’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할까? 한국을 찾기도 했던 랑시에르가 이 설전에 코멘트를 요청받았다면 그는 어떻게 답할까?
『해방된 관객』은 랑시에르가 지적 해방의 사유와 오늘날 관객에 관한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 지적 해방에 관한 다섯 가지 교훈』(1987)에서 교육의 문제를 지적 능력(지능)의 평등이라는 철학적·정치적 문제로 옮겨 사유하는 지적 모험을 펼쳤다. 그는 ‘무지한 스승의 테마’를 가지고 관객에 대해 논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요청에 답하는 『해방된 관객』은 『무지한 스승』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모험담으로, 지적 불평등의 고리, 지적 해방의 사유를 연극과 관객이라는 예술(연극, 회화, 사진, 영화, 비디오, 퍼포먼스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 오늘날 ‘해방된 관객’, ‘평등한 관객’의 자리를 찾는다. [『해방된 관객』의 한국어판 역시 『무지한 스승』을 옮긴 양창렬 번역가가 맡았다.]
지능의 불평등이 교육학의 신화이듯, 관객의 수동성이 고전 연극 패러다임의 불평등주의적 전제에 지나지 않다면, 관객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을 지각하고 해석하고 비교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관객은 그 자체로 이미 해방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관객이 어떻게 해방되는가라는 물음은 관객의 해방되지 않은 상태를 전제하기에 잘못 제기된 물음은 아닌가? 『무지한 스승』의 도식을 예술에 적용하는 『해방된 관객』에서 해방하는 스승에 해당하는 심급이 존재하는가? 관객 자체가 이미 해방되어 있다면 관객이 작품을 만나 개인적 모험을 하며 자신의 역량을 증대하는지 혹은 그런 역량의 발휘를 가로막는 제도나 장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은 무용해지지 않는가?
랑시에르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의문을 해소한다. 관객이 하는 것은 결국 ‘주의’라고, 주의란 시선이나 청취를 끌고 감으로써 관객이 제 고유의 저작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다시 말해, “어떤 작업의 결과물 앞에 있는 자가 그 결과물을 전유하여 제 것으로 만들 때 해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림이 있다는 사실에, 그림을 바라본다는 사실에 그 자체로 해방의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시선을 이끄는 가운데 해방이 있으며, 그것이 내가 관심을 갖는 측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요컨대 “관객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읽거나 보거나 들은 것이 낳은 새로운 가능태들에 의거해 관객이 기존의 것을 변이시키는 조건들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2. “관객이 된다는 것”―“아무나에게 속하는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 관객은 거리를 둔 구경꾼인 동시에 스펙터클에 대한 능동적 해석가이다
연극에서 배우(acteur)와 관객(spectateur)은 그 단어의 로마 어원이 가리키듯 각각 능동적인 행위자(actor)와 수동적인 구경꾼(spectator)을 말한다. 행위/인식과 보기의 구분이 연극에 뿌리 깊이 박힌 것이다. 이러한 나눔에 답하는 몇 가지 정식이 있다. 플라톤은 연극이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을 비판하며 연극을 폐지하고 무용 공동체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연극 안에서 배우와 관객의 동일시/정체화를 방해하고 관객이 ‘인식하는’ 관찰자가 되도록 유도한다. 앙토냉 아르토는 관객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연극 안에 ‘참여’하여 생의 에너지를 얻는 구성원으로 만든다. 브레히트와 아르토의 방식은 대립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두 연극 개혁자는 모두 연극이라는 매개를 이용해 플라톤이 하고자 했던 것, 즉 관객을 능동적 존재로 변환하기를 이뤄내려 한 것이다. 랑시에르는 배우와 관객 사이 불평등을 제거하려는 기획이 전자의 능동성과 후자의 수동성이라는 근본 전제를 되풀이하는 한에서만 유지되며, 이것이 『무지한 스승』의 ‘불평등의 고리’, ‘바보 만들기’와 닮아 있다고 본다.
해방은 보기와 행위 사이의 대립이 의문에 부쳐질 때 시작된다. 해방은 말하고, 보고, 행하는 관계들을 구조 짓는 명증성들 자체가 지배와 예속의 구조에 속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할 때 시작된다. 해방은 보기 역시 이 위치 분배를 확인하거나 변형하는 행위일 수 있음을 이해할 때 시작된다.
관객 역시 학생이나 학자처럼 행위한다. 관객은 관찰하고 선별하고 비교하고 해석한다. 관객은 자신이 본 것을 그가 다른 무대에서, 다른 종류의 장소에서 보았던 다른 많은 것들과 연결한다. 관객은 자기 앞에 있는 시의 요소들을 가지고 자기만의 시를 짓는다. 관객은 퍼포먼스에 참여한다. 퍼포먼스를 자기 방식대로 다시 하면서, 예를 들어 퍼포먼스가 전달한다고 간주되는 생의 에너지를 회피하면서 퍼포먼스를 단순한 이미지로 만들고 이 단순한 이미지를 자신이 책에서 읽었거나 꿈꾸었던, 자신이 겪었거나 지어냈던 이야기와 연결시키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관객은 거리를 둔 구경꾼인 동시에 자신에게 제시되는 스펙터클에 대한 능동적 해석가이다.
바로 이것이 요점이다. 배우나 극작가, 연출가, 무용수 또는 퍼포머가 하듯 관객들이 그들 나름의 시를 짓는 만큼, 관객들도 뭔가를 보고 느끼고 이해한다. 극작가나 연출가는 관객이 이러한 것을 보고, 저러한 것을 느끼고, 이러한 것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저러한 결론을 끌어내길 바랄지 모른다. 이것이 바보를 만드는 교육자의 논리요, [어떤 것이] 동일하게 똑바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3. 관객의 역설―관객은 무지한 자, 수동적인 자라는 기존 질서와 단절하는 관객의 주체적 역량: 아무나의 지적인 평등에서 출발하는 감성적[미학적] 해방―해방된 관객, 민주주의적 인민
‘보는 자는 볼 줄 모른다.’
이 전제는 플라톤의 동굴에서 스펙터클 사회에 대한 고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관통한다. 관객의 해방이란―이러한 전제와 달리―관객이 자신이 본 것을 보고,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뭔가를 하는 능력이 있음을 긍정하는 것이다.
혹자는 맹인들에게 그들이 보지 못함을 보여주려고 섬세한 설명 내지 스펙터클한 설치를 사용한다. 혹자는 스펙터클을 행위로, 관객을 행위하는 인간으로 변환함으로써 악을 근절하길 바란다.
『해방된 관객』은 이 두 전략에 간단한 가설 하나를 맞세운다. 본다는 사실에는 어떤 결함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 구속과 행위의 위계에 바쳐졌던 이들이 관객으로 변신한 것은 사회적 지위를 뒤엎는 데 한몫했다. 인간이 이미지의 과잉에 의해 소외됐다는 비난은 무엇보다 이 무질서에 대한 지배 질서의 응답이었다. 관객의 해방이란 관객이 자신이 본 것을 보고,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뭔가를 하는 능력이 있음을 긍정하는 것이다.
동시대 예술의 몇몇 형태와 토론을 검토하면서, 『해방된 관객』은 다음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 정치적 예술 내지 예술의 정치란 무슨 뜻인가? 비판적 예술의 전통 그리고 예술을 삶 속에 넣으려는 욕망은 어떤 상황에 있는가? 상품과 이미지에 대한 투사적 비판은 어떻게 상품과 이미지의 전능함을 멜랑콜리하게 긍정하거나 ‘민주주의적 인간’을 반동적으로 규탄하게 됐는가?
예술 제작이 있고 그 예술 제작에 부합하는 감각 능력을 지니거나 지니지 못한 관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관객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주위에 있는 것을 보고, 듣고, 관찰하고, 자신이 보고 들었던 것과 새로 보고 듣게 된 것을 비교하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기. 관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능력. 하지만 이 간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동시대 예술에서 덜어내야 했던 짐들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탁월한 성취를 이룬 전작 『이미지의 운명』에 이은 이 후속편에서 … 랑시에르는 ‘스펙터클’에 대한 그간의 익숙한 비판에 맞서 강력한 논의를 펼친다. 그 설득력 있는 논거는 미술, 사진, 문학, 비디오 설치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으며, 또한 자본주의 비판에서 진보 진영의 ‘멜랑콜리’와 우익의 ‘광기’를 냉담하게 즐기며 분석해내고 있다.” ― 《가디언》
“『해방된 관객』의 주요 모티프와 도식은 랑시에르 본인이 이 책 서두에서 밝히듯이 『무지한 스승』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랑시에르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비판적 사유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및 『불화』를, 불일치와 합의는 『불화』를,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용납 불가능한 것 내지 재현 불가능한 것에 관해서는 『이미지의 운명』을, 관계적 예술에 대한 논의는 『미학 안의 불편함』을 참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이 책을 통해 랑시에르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방금 열거한 책들?게다가 모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으니?을 디딤돌 삼아 본인의 관심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의 말」
컨템포러리 총서
현실문화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총서’는 21세기 동시대의 사유와 실천을 한데 엮는 시리즈이다. 정치와 사회, 철학, 미학 등을 넘나드는 동시대 사상가들의 논의는 우리 사회에 지적 자극이 되어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검증된 번역자의 공들인 번역과 해설이 단단히 얽혀 있는 사유의 매듭을 풀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문제의식의 발전과 확장을 촉발할 수 있도록 출판사로서도 최선을 다했다. 컨템포러리 총서의 목록은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다. 글의 분량이나 문체, 탐구 영역에 엄격한 선을 긋지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서로 다른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부딪고 뒤섞이면서 지금 이곳, 우리가 가진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 유용하고 유익한 질문을 던져줄 것이라고 믿는 탓이다. 이 총서를 통해 독자들이 더 넓고 깊고 즐겁게 소통하며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작가 소개
저 : 자크 랑시에르
1940년 알제리 출생, 프랑스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 를 졸업했다. 파리 8대학에서 1969~2000년까지 철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파리 8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의 수제자로서 1965년 『자본론 독해, Lire le Capital』 작업에 참여해서 명성을 얻었으나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을 기점으로 루이 알튀세와 결별했다. 결별의 이유는 마르크시즘의 엄격한 과학성과 결정론적 사상에 충실했던 알튀세와 실천 중심의 마오이즘(Maoism)에 경도되어 있던 랑시에르의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루이 알튀세의 단정적 언어해석 원칙에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후 알튀세와는 다른 노선을 추구했고, 1974년 『알튀세로부터의 교훈, La lecon d''Althusser』을 출간하면서 알튀세의 사상을 비판했다. 1970년대 말 이후에는 젊은 좌파성향의 지식인들 - 조앙 보렐(Joan Borell), 아를레트 파르쥬(Arlette Farge), 쥬느비에브 프레스(Genevieve Fraisse) - 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노동해방 연구에 몰두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밤』, 『노동자의 꿈에 대한 보고서』를 집필했다.
자크 랑시에르는 1980년대 중반부터 과거와는 다른 인물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분기점은 조세프 자코토(Josephe Jacotot)에 대한 고찰이었다. 이 연구의 결과물이 『무지한 스승, le Maitre Ignorant』이었고, 이 저서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마르크시즘과의 결별을 공인받게 되었다. 그는 다수의 책을 집필한 영화애호가이기도 해서,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분석한 저술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무지한 스승, le Maitre Ignorant』1987, 『정치의 주변부에서, Aux bords du politique』1990, 『침묵의 언어, La parole muette』1998, 『문학 정치, Politique de la litterature』2007, 『프롤레타리아의 밤, La nuit des proletaires』1981, 『노동자의 언어, La parole ouvriere』1976, Alain Faure공저 외 다수가 있다.
역 : 양창렬
파리 1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 ‘에피쿠로스의 운명 비판’이라는 주제로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공존의 기술』(공저, 그린비, 2007),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공저, 난장, 2010) 등을 썼으며,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08)와 『무지한 스승: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궁리, 2008), 장 살렘의 『고대 원자론: 쾌락의 윤리로서의 유물론』(난장, 2009), 조르조 아감벤의 『목적 없는 수단』(공역, 난장, 2009)과 『장치란 무엇인가? 외』(난장, 2010)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주요 목차
I. 해방된 관객
II. 비판적 사유의 재난
III. 정치적 예술의 역설
IV. 용납할 수 없는 이미지
V. 생각에 잠긴 이미지
텍스트 출전
부록: 미학적 전복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관객은 이미 해방된 존재이다.” 추구되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전제되어야 할 정치적 원칙이다.
예술가와 관객 사이의 앎과 무지, 능동과 수동의 위치라는 전제에 대한 미학적 전복
예술가와 관객, 창작자/생산자와 향유자/소비자 사이 지적 불평등을 제거하려는 실천
교육, 정치, 문학, 영화, 미술 등 분과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유하는 자리옮김의 철학자 랑시에르가 동시대 예술에 제기하는 ‘지적 해방’ ‘지적 능력의 평등’이라는 비판적 사유
1.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적 해방의 사유와 오늘날 관객에 관한 물음 사이에 아무런 뚜렷한 관계도 없다는 것이 또한 기회인 듯 보였다”
: 바르트가 말하는 저자의 죽음, 랑시에르가 말하는 관객의 해방 / 해방된 관객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
“출판사가 문학의 해석에 있어 엄정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든 문학은 해석하는 자의 자유와 역량 위에서 시시각각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제제는 출판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전시장에 가면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 라는 경고문을 보게 됩니다. 왜 손대지 말아야 할까요.”
“아이유 ‘제제.’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을 출판사가 독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 시대에 웬만큼 무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망발이죠.”
작년, 외국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모티프로 삼은 가수 아이유의 신곡 「제제」가 낳은 소아성애 논란을 둘러싸고 해당 출판사와 [그들 스스로 관객이기도 한] 한 작가[예술가] 및 두 비평가가 작품과 관객을 사이에 두고 SNS에서 벌인 설전이다.
수동적이며 무지하다고 전제되는 관객들 혹은 구경꾼들은 이 같은 설전에 대해, 작품과 자신들 사이를 ‘매개’하는 ‘스승’의 ‘설명’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할까? 한국을 찾기도 했던 랑시에르가 이 설전에 코멘트를 요청받았다면 그는 어떻게 답할까?
『해방된 관객』은 랑시에르가 지적 해방의 사유와 오늘날 관객에 관한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랑시에르는 『무지한 스승: 지적 해방에 관한 다섯 가지 교훈』(1987)에서 교육의 문제를 지적 능력(지능)의 평등이라는 철학적·정치적 문제로 옮겨 사유하는 지적 모험을 펼쳤다. 그는 ‘무지한 스승의 테마’를 가지고 관객에 대해 논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요청에 답하는 『해방된 관객』은 『무지한 스승』에서 시작된 또 하나의 모험담으로, 지적 불평등의 고리, 지적 해방의 사유를 연극과 관객이라는 예술(연극, 회화, 사진, 영화, 비디오, 퍼포먼스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 오늘날 ‘해방된 관객’, ‘평등한 관객’의 자리를 찾는다. [『해방된 관객』의 한국어판 역시 『무지한 스승』을 옮긴 양창렬 번역가가 맡았다.]
지능의 불평등이 교육학의 신화이듯, 관객의 수동성이 고전 연극 패러다임의 불평등주의적 전제에 지나지 않다면, 관객이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작품을 지각하고 해석하고 비교하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면, 관객은 그 자체로 이미 해방되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관객이 어떻게 해방되는가라는 물음은 관객의 해방되지 않은 상태를 전제하기에 잘못 제기된 물음은 아닌가? 『무지한 스승』의 도식을 예술에 적용하는 『해방된 관객』에서 해방하는 스승에 해당하는 심급이 존재하는가? 관객 자체가 이미 해방되어 있다면 관객이 작품을 만나 개인적 모험을 하며 자신의 역량을 증대하는지 혹은 그런 역량의 발휘를 가로막는 제도나 장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석은 무용해지지 않는가?
랑시에르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의문을 해소한다. 관객이 하는 것은 결국 ‘주의’라고, 주의란 시선이나 청취를 끌고 감으로써 관객이 제 고유의 저작을 만들어내는 것을 가리킨다고 했다. 다시 말해, “어떤 작업의 결과물 앞에 있는 자가 그 결과물을 전유하여 제 것으로 만들 때 해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림이 있다는 사실에, 그림을 바라본다는 사실에 그 자체로 해방의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시선을 이끄는 가운데 해방이 있으며, 그것이 내가 관심을 갖는 측면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요컨대 “관객이 된다는 것은, 자신이 읽거나 보거나 들은 것이 낳은 새로운 가능태들에 의거해 관객이 기존의 것을 변이시키는 조건들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2. “관객이 된다는 것”―“아무나에게 속하는 느끼고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 관객은 거리를 둔 구경꾼인 동시에 스펙터클에 대한 능동적 해석가이다
연극에서 배우(acteur)와 관객(spectateur)은 그 단어의 로마 어원이 가리키듯 각각 능동적인 행위자(actor)와 수동적인 구경꾼(spectator)을 말한다. 행위/인식과 보기의 구분이 연극에 뿌리 깊이 박힌 것이다. 이러한 나눔에 답하는 몇 가지 정식이 있다. 플라톤은 연극이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을 비판하며 연극을 폐지하고 무용 공동체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연극 안에서 배우와 관객의 동일시/정체화를 방해하고 관객이 ‘인식하는’ 관찰자가 되도록 유도한다. 앙토냉 아르토는 관객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관찰자가 아니라 연극 안에 ‘참여’하여 생의 에너지를 얻는 구성원으로 만든다. 브레히트와 아르토의 방식은 대립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두 연극 개혁자는 모두 연극이라는 매개를 이용해 플라톤이 하고자 했던 것, 즉 관객을 능동적 존재로 변환하기를 이뤄내려 한 것이다. 랑시에르는 배우와 관객 사이 불평등을 제거하려는 기획이 전자의 능동성과 후자의 수동성이라는 근본 전제를 되풀이하는 한에서만 유지되며, 이것이 『무지한 스승』의 ‘불평등의 고리’, ‘바보 만들기’와 닮아 있다고 본다.
해방은 보기와 행위 사이의 대립이 의문에 부쳐질 때 시작된다. 해방은 말하고, 보고, 행하는 관계들을 구조 짓는 명증성들 자체가 지배와 예속의 구조에 속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이해할 때 시작된다. 해방은 보기 역시 이 위치 분배를 확인하거나 변형하는 행위일 수 있음을 이해할 때 시작된다.
관객 역시 학생이나 학자처럼 행위한다. 관객은 관찰하고 선별하고 비교하고 해석한다. 관객은 자신이 본 것을 그가 다른 무대에서, 다른 종류의 장소에서 보았던 다른 많은 것들과 연결한다. 관객은 자기 앞에 있는 시의 요소들을 가지고 자기만의 시를 짓는다. 관객은 퍼포먼스에 참여한다. 퍼포먼스를 자기 방식대로 다시 하면서, 예를 들어 퍼포먼스가 전달한다고 간주되는 생의 에너지를 회피하면서 퍼포먼스를 단순한 이미지로 만들고 이 단순한 이미지를 자신이 책에서 읽었거나 꿈꾸었던, 자신이 겪었거나 지어냈던 이야기와 연결시키면서 말이다. 그리하여 관객은 거리를 둔 구경꾼인 동시에 자신에게 제시되는 스펙터클에 대한 능동적 해석가이다.
바로 이것이 요점이다. 배우나 극작가, 연출가, 무용수 또는 퍼포머가 하듯 관객들이 그들 나름의 시를 짓는 만큼, 관객들도 뭔가를 보고 느끼고 이해한다. 극작가나 연출가는 관객이 이러한 것을 보고, 저러한 것을 느끼고, 이러한 것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저러한 결론을 끌어내길 바랄지 모른다. 이것이 바보를 만드는 교육자의 논리요, [어떤 것이] 동일하게 똑바로 전달되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3. 관객의 역설―관객은 무지한 자, 수동적인 자라는 기존 질서와 단절하는 관객의 주체적 역량: 아무나의 지적인 평등에서 출발하는 감성적[미학적] 해방―해방된 관객, 민주주의적 인민
‘보는 자는 볼 줄 모른다.’
이 전제는 플라톤의 동굴에서 스펙터클 사회에 대한 고발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역사를 관통한다. 관객의 해방이란―이러한 전제와 달리―관객이 자신이 본 것을 보고,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뭔가를 하는 능력이 있음을 긍정하는 것이다.
혹자는 맹인들에게 그들이 보지 못함을 보여주려고 섬세한 설명 내지 스펙터클한 설치를 사용한다. 혹자는 스펙터클을 행위로, 관객을 행위하는 인간으로 변환함으로써 악을 근절하길 바란다.
『해방된 관객』은 이 두 전략에 간단한 가설 하나를 맞세운다. 본다는 사실에는 어떤 결함도 들어 있지 않다는 것. 구속과 행위의 위계에 바쳐졌던 이들이 관객으로 변신한 것은 사회적 지위를 뒤엎는 데 한몫했다. 인간이 이미지의 과잉에 의해 소외됐다는 비난은 무엇보다 이 무질서에 대한 지배 질서의 응답이었다. 관객의 해방이란 관객이 자신이 본 것을 보고,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가지고 자신이 뭔가를 하는 능력이 있음을 긍정하는 것이다.
동시대 예술의 몇몇 형태와 토론을 검토하면서, 『해방된 관객』은 다음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 정치적 예술 내지 예술의 정치란 무슨 뜻인가? 비판적 예술의 전통 그리고 예술을 삶 속에 넣으려는 욕망은 어떤 상황에 있는가? 상품과 이미지에 대한 투사적 비판은 어떻게 상품과 이미지의 전능함을 멜랑콜리하게 긍정하거나 ‘민주주의적 인간’을 반동적으로 규탄하게 됐는가?
예술 제작이 있고 그 예술 제작에 부합하는 감각 능력을 지니거나 지니지 못한 관객이 있는 것이 아니다. 관객의 능력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주위에 있는 것을 보고, 듣고, 관찰하고, 자신이 보고 들었던 것과 새로 보고 듣게 된 것을 비교하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기. 관객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능력. 하지만 이 간단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동시대 예술에서 덜어내야 했던 짐들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탁월한 성취를 이룬 전작 『이미지의 운명』에 이은 이 후속편에서 … 랑시에르는 ‘스펙터클’에 대한 그간의 익숙한 비판에 맞서 강력한 논의를 펼친다. 그 설득력 있는 논거는 미술, 사진, 문학, 비디오 설치에 대한 면밀한 독해를 통해 구체화되고 있으며, 또한 자본주의 비판에서 진보 진영의 ‘멜랑콜리’와 우익의 ‘광기’를 냉담하게 즐기며 분석해내고 있다.” ― 《가디언》
“『해방된 관객』의 주요 모티프와 도식은 랑시에르 본인이 이 책 서두에서 밝히듯이 『무지한 스승』에 바탕을 두고 있다. 또한 랑시에르에 익숙한 독자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비판적 사유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및 『불화』를, 불일치와 합의는 『불화』를, 이미지와 텍스트 그리고 용납 불가능한 것 내지 재현 불가능한 것에 관해서는 『이미지의 운명』을, 관계적 예술에 대한 논의는 『미학 안의 불편함』을 참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이 책을 통해 랑시에르를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방금 열거한 책들?게다가 모두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으니?을 디딤돌 삼아 본인의 관심을 확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옮긴이의 말」
컨템포러리 총서
현실문화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컨템포러리(Contemporary) 총서’는 21세기 동시대의 사유와 실천을 한데 엮는 시리즈이다. 정치와 사회, 철학, 미학 등을 넘나드는 동시대 사상가들의 논의는 우리 사회에 지적 자극이 되어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검증된 번역자의 공들인 번역과 해설이 단단히 얽혀 있는 사유의 매듭을 풀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문제의식의 발전과 확장을 촉발할 수 있도록 출판사로서도 최선을 다했다. 컨템포러리 총서의 목록은 아직 확정되어 있지 않다. 글의 분량이나 문체, 탐구 영역에 엄격한 선을 긋지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서로 다른 다양한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부딪고 뒤섞이면서 지금 이곳, 우리가 가진 문제들을 풀어내는 데 유용하고 유익한 질문을 던져줄 것이라고 믿는 탓이다. 이 총서를 통해 독자들이 더 넓고 깊고 즐겁게 소통하며 다양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기를 기원한다.
▣ 작가 소개
저 : 자크 랑시에르
1940년 알제리 출생, 프랑스 고등사범학교(Ecole Normale Superieure) 를 졸업했다. 파리 8대학에서 1969~2000년까지 철학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파리 8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다.
루이 알튀세(Louis Althusser)의 수제자로서 1965년 『자본론 독해, Lire le Capital』 작업에 참여해서 명성을 얻었으나 1968년 프랑스 학생운동을 기점으로 루이 알튀세와 결별했다. 결별의 이유는 마르크시즘의 엄격한 과학성과 결정론적 사상에 충실했던 알튀세와 실천 중심의 마오이즘(Maoism)에 경도되어 있던 랑시에르의 견해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특히 루이 알튀세의 단정적 언어해석 원칙에 반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사람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후 알튀세와는 다른 노선을 추구했고, 1974년 『알튀세로부터의 교훈, La lecon d''Althusser』을 출간하면서 알튀세의 사상을 비판했다. 1970년대 말 이후에는 젊은 좌파성향의 지식인들 - 조앙 보렐(Joan Borell), 아를레트 파르쥬(Arlette Farge), 쥬느비에브 프레스(Genevieve Fraisse) - 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노동해방 연구에 몰두하면서 『프롤레타리아의 밤』, 『노동자의 꿈에 대한 보고서』를 집필했다.
자크 랑시에르는 1980년대 중반부터 과거와는 다른 인물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그 분기점은 조세프 자코토(Josephe Jacotot)에 대한 고찰이었다. 이 연구의 결과물이 『무지한 스승, le Maitre Ignorant』이었고, 이 저서를 발표하면서 명성을 얻음과 동시에 마르크시즘과의 결별을 공인받게 되었다. 그는 다수의 책을 집필한 영화애호가이기도 해서, 미학과 정치의 관계를 분석한 저술활동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저서로는 『무지한 스승, le Maitre Ignorant』1987, 『정치의 주변부에서, Aux bords du politique』1990, 『침묵의 언어, La parole muette』1998, 『문학 정치, Politique de la litterature』2007, 『프롤레타리아의 밤, La nuit des proletaires』1981, 『노동자의 언어, La parole ouvriere』1976, Alain Faure공저 외 다수가 있다.
역 : 양창렬
파리 1대학교 철학과 박사 과정. ‘에피쿠로스의 운명 비판’이라는 주제로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공존의 기술』(공저, 그린비, 2007), 『현대 정치철학의 모험』(공저, 난장, 2010) 등을 썼으며, 자크 랑시에르의 『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길, 2008)와 『무지한 스승: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궁리, 2008), 장 살렘의 『고대 원자론: 쾌락의 윤리로서의 유물론』(난장, 2009), 조르조 아감벤의 『목적 없는 수단』(공역, 난장, 2009)과 『장치란 무엇인가? 외』(난장, 2010)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주요 목차
I. 해방된 관객
II. 비판적 사유의 재난
III. 정치적 예술의 역설
IV. 용납할 수 없는 이미지
V. 생각에 잠긴 이미지
텍스트 출전
부록: 미학적 전복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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