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천 개의 서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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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이은옥
출판사항실천문학사, 발행일:2017/12/22
형태사항p.126 A5판:21CM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39222540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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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일상의 상투성에서 벗어나 비상하고픈 불안과 동시에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절망이 만나 안개가 내려앉는다. 투명성을 갈망하면서도 전망이 보이지 않는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발길을 옮기고 있다는 점에서 이은옥의 시는 분열적이다. 시인은 속도를 갈망하면서도 거부하고 정지를 추구하면서도 그에 대한 권태를 느낀다. 투명한 소통을 원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불가피한 이중생활을 무리 없이 소화해 내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삶 자체가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데서 느껴지는 비애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첫눈처럼 첫 글자와 이별을 의미하는 마지막이라는 글자
아름답고도 아름다운 연애 스토리와 키노트 스피치를 잘하는 연사와 상숙, 순이와 영자와 정연, 영숙이 미란이 금란이 종화와 선희, 미선, 국희와 영래, 영인, 명희와 성례, 성희, 정기, 매년 꽃피는 채송화처럼 오래오래 울렁거리네, ― 「울렁거리는 것들1」 부분
이은옥의 시집 전반에는 사진을 찍듯이 어떠한 순간을 프레임으로 포착하고자 하는 욕망과 더불어, 그렇게 해서 포착된 이미지에 대한 울렁임이 두드러진다. 이 울렁임은 불가항력적인 특정 힘에 반응하는 온몸의 감각이다. 주체가 원하는 프레임에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다시는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상기시키는 사고의 관성을 주체의 몸은 거부하고 있다. 어떡해서든 기억을 좁은 시공간에 가두려고 하는 강박은 그만큼 그녀가 시간의 비가역성에 고통 받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울렁거리는 것들1」에 나열된 고유명사들은 그것이 나열된다는 것 자체로 울렁거림을 불러일으킨다. 채송화처럼 소박하고 어여쁜 이름들…….하지만 채송화가 매년 같은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듯 이들 역시 기억과는 상이한 존재가 되어가고 말 것이다.
이은옥에게는 그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 같은 것이 엿보인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기억처럼, 저 이름들 역시 그러하리라는 예감에 그녀는 균형을 잃고 기우뚱한다.

오후, 광화문으로 이동한다 나의 목적지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숙소로 가는 길을 지하철에서 발견한다 점점 쇠약해지는 말들, 엉겅퀴처럼 돋아난 혓바늘, 겨울문턱에서 아이들을 섬강에 두고 왔다 나를 찍어 내리는 저 침묵, 저 보름달, 유년의 바다에서 헤엄치던 말미잘의 슬픈 몸을 본다 브라운관에 뜬 저 아름다운 알들은, 언제 부화하여 물위로 떠오를 것인지 ―「다시 섬강에서」 부분

시인은 삶을 창발 시킬 수 있는 언어의 무한한 능력이 박탈당하고 있는 상황의 절박함을 고발한다. 이는 언어에 대한 신뢰에 기반 한다. 벤야민은 언어를 수단이 아니라 매체로 바라본다. 언어가 매체라는 것은 그것이 일종의 그릇이거나 액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릇이나 액자가 없으면 그 안에 들어갈 내용물이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해도 소용이 없다. 이은옥은 그러한 말의 쇠약해짐을 걱정하며 말이 쇠약해짐으로써 그 안에 든 내용물 역시 텅 비어 버릴 수 있음을 염려한다. 위의 시에서도 끊임없이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는 유목적 삶을 따라 기억을 담아 낼 말은 단단함을 상실하고 침묵은 무겁게 가라앉는다. 쇠약해진 말은 희미해지는 유년의 기억과 맞물려 시의 슬픈 육체를 구현해 낸다. 어쩌면 이은옥은 말들이 삶을 배태해 낼 알이 되어 다시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유년의 기억을 헤집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안지영, 문학평론가)

저자의 말

땅속 벌레들도 몽상에 들고 낙엽들도 납작납작 몽상에 들었다. 어느 곳으로든지 나그네라는 이름을 차용하여 겨울에 들어야 한다. 숲속은 여전히 질서정연하게 분주하고 행적을 논하기에는 아직 억울하고 변방에서 서성거리기에는 시간이 다급하고 아직도 두리번거리기만 하기에는 참으로 헛헛하고, 바람의 통로에 서 있기만 하기에는 참으로 그러하거늘, 도를 넘어 경계를 넘어 대륙을 횡단할 수만 있다면, 고래의 뱃속을 채우는 말들이 수학 공식처럼 아주 잘 맞아 떨어지기만 한다면, 거대한 오큘러스의 천사의 날개가 저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이제 책등을 뒤집고 청동거울을 닦는 손을 놓고 추수를 끝낸 사람들처럼 언어의 축제에 합류하리라. 그리고 구름에 기대 그대의 이름을 호명하리라. 저기 멀리 제4부에서 거꾸로 제1부까지 거슬러 올라오면서 오랜 시간의 갭을 이겨 내며 서랍에 간직해 둔 간극이라는 언어를 불러낼 수밖에 없었다.

 

작가 소개

저 : 이은옥
강원도 삼척에서 출생했다. 1994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에 [어성전의 봄]으로 당선했다.  

 

목 차

제1부 | 초극超克
수런거림과 두리번거림 사이에서 조롱을 사다
앵두
서사
스노우볼
그 여자
물
붉은 벽
나에게는 천 개의 서랍이 있다
곁과 속
숨은그림찾기
단초
과도기, 우리는
투명한 중첩 또는 무거움
포크
울렁거리는 것들1

제2부 | 간극間隙
광화문에서 수천 개의 떨어지는 달을 줍고, 해가 떴다 행적에 불과한 한편의 기록
간극

제3부 | 장극牆隙
틈으로 갈라진 경계마다 기호들이 난립하고 변방에서 개인의 질서를 정립하는 방법을 서설하다
검정개
몽상
골뱅이 집
거리의 무늬
석불石佛
나는 얼마나 불안한가 그리고 저,
눈 속 자작나무 또한 얼마나 불안한가
끝
목화밭
닭장집에서
동막
불안한 대화
경포
영화
마지막 집
낙천樂川
흔적
다시 섬강에서
강물 소리
꿈속의 책상
그들의 기억
간이역
청동 얼굴
액자는 있고 그림이 없는
일상의 미학
사월
걸어가는 개
삼국지를 보는 여자
음화

제4부 | 세극細隙
바람의 틈으로 구름이 난분분하고, 출가를 자극하다
오랜만에, 아주 오랫동안
구상나무
옆집 뉴스에서
콜렉터
달
나리
파일넘버 19940508
회항
신 구운몽
매화
여행, 시차 속에서
앙코르와트에서 사롱 치마를 사지 못했다
국곡리 151번지에 사는 부친
경매
거미가 집을 짓는 동안
여섯 개의 시계가 있는 방
블랙홀
플라멩고
광화문에서 한강대교를 지나 상도동까지
배꽃 지다
소와 아이
접근 방식
한 통의 편지
어성전의 봄

해설
시인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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