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파자의 몇 예를 들어보면, 청(聽)은 이(耳), 왕(王), 십(十), 사(四), 일(一), 심(心)으로 열 명이 이말 저말을 사방으로 마음을 흩뜨리지 말고 마음을 굳게(일심)하여 왕(성군)같이 들으라고=경청하라고 해석하고 싶다. 또한 의(意)는 입(立), 왈(曰), 심(心)으로 의견은 마음에서 바른(똑바로 선)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합자는 더 재미있다. 오래전 학생들을 가르칠 때, 합자를 하면서 우리 아이들의 기발한 창의력에 감탄한 적이 있다. 여학생 한 명이 효(孝)는 남자만 하는 것이고 자기는 여자이니 효녀 효자를 만들었다고 하며 토(土) 밑에 자(子) 대신 여(女)를 넣었다. 우(雨)의 점 주(·) 대신 뚫을 곤(|)을 여러 개 넣어 ‘장마질 우’라고 한 학생도 있었다. 한자 실력이 좋은 학생 하나는 기(器)의 구(口) 네 곳에 육(肉), 채(菜), 장(醬), 란(卵)을 넣어 ‘비빔밥’ 자를 만들었다. 차(車)와 주(走)를 합쳐 ‘뺑소니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정말 기발한 생각이다.
중학교 때인가? 이웃과 우리 집과의 밭 경계선으로 어머님이 속을 상하신 일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자연적으로 형성된 밭둑이나 작은 도랑으로 경계를 삼았는데, 장마가 지고 토사가 밀려 경계선이 불분명해졌었다. 어머니는 항상 ‘저쪽 미루나무 있지? 여기서 보아 그 나무와 반듯하게 이쪽까지가 우리 밭이야’라고 하셨다.
그런데 욕심 많은 이웃이 두어 걸음도 더 될 만큼 우리 밭으로 넘어와 밭둑을 만들었다. 몇 번의 다툼에도 경계선은 고쳐지지 않았고, 어머니는 ‘혼자 산다고 무시당한다’시며 저녁이면 눈물을 흘리시곤 했다.
그러던 중 당시 도청에 다니시던 숙부가 오셨고 어머니는 구원병을 만나신 듯, 숙부를 밭에까지 모시고 가 자초지종 설명을 하셨고, 급기야 측량기사가 와서 잃었던 밭을 되찾은 일이 있었다. 그때 숙부가 혼잣말처럼 하셨다. “정구죽천인 것들”. “예?” “너도 크면 알아. 세상은 억지로 하는 게 아니거든, 마음을 크게 가져라. 저런 정구죽천 같은 불상배들하고는 상대하지 마라.”고 하였다. “정구죽천이 무엇인데요?” “응, 허허허, 가소(可笑)롭다는 게야, 허허허.”
당시는 그 말의 뜻을 잘 몰랐다. 나이가 들면서 가끔씩 떠오르는 ‘정구죽천’, 가소(可笑)로움을 파자한 것이었다. 정구죽천(丁口竹天), ‘가소로운 것들’보다는 ‘정구죽천인 것들’하면 상대도 알아듣기 어렵고, 말하는 이는 좀 품위 있어 보이고, 뭐 그런 생각이 든다.
충청신문에 칼럼을 썼다. 그것도 「세상읽기」라는 코너에. 살아가면서 이것저것 쓰다 보니 세상이 참 정구죽천(丁口竹天)이다.
구약성경 전도서 1장 2절에는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말이 있다. 전도자는 다윗의 아들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명판결을 내린 솔로몬왕이다. 그는 수많은 정비와 첩을 두었고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으며 황금과 백향목으로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 가장 부유하고, 가장 지혜로우며, 많은 잠언을 말하고, 강력한 권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인생을 논하면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했다.
한 푼 더 벌려고, 한 사람 더 찍어 내리려고, 조금 더 잘난체하려고, 그렇게 아웅다웅하는 인생들-뒷동산에 올라서 내려다보면 별것 아닌 정구죽천(丁口竹天)인 삶이다. 터무니없고 같잖아서 우스운 삶이다. 이제 남은 삶, 가소(可笑)로움에서 벗어나 가소(佳宵)하는, 작은 것에서 아름다움의 가치를 찾는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희(古稀)를 앞두고 책을 낸다는 게 좀 쑥스럽다. “그 좋은 재주 두고 썩히지 말고 출판해.”라는 모 선배의 말을 따라, “글 쓴 거 모으시오. 출판사 알려드릴 테니…….”라고 말한 대전 서구문학동료들의 조언에 따라 여기저기 파일을 뒤져 그간에 쓴 글을 모아 보았다.
2017년 늦가을
이종구
작가 소개
저자 : 이종구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청주교육대와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한 후 충남대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2015년 『대전문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40여 년의 교직생활에서 학생들의 글짓기 지도에 열정을 쏟아 교육장·교육감·교육부 장관상과 교직 공로 교육부장관 표창, 녹조근정훈장을 받았다.
현재 교육 전문 인터넷신문 ‘학부모뉴스24’ 편집국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면서 인성교육지도사·학교폭력예방 강사·웃음치료교육사로 여러 학교에서 인성진로교육·학부모 평생교육 강의를 하고 있다.
목 차
책 머리에·04
제1부 있음에(to be)
존재·15
호칭(呼稱)·18
아버지·22
흥(興)해라·29
스승의 날·34
선물·38
빈 교실·42
보육대란·44
손 편지·47
언(言), 어(語) 그리고 화(話)·53
손맛·58
제2부 움직임에(being full of life)
3(삼)·65
이벤트·69
더위팔기·73
국기·77
무궁화·81
긍정·85
한글 문해·89
찰나·93
정유년(丁酉年)·98
입학식·102
감칠맛·107
살림·111
새(新, new)·115
제3부 거둠에(harvesting)
맞장구·121
덤·125
사랑과 꿈·129
가치·133
올 추석엔·137
물·141
울타리(牆)·145
일기·149
교사 폭력·159
창조교육·163
청양(靑羊)·166
웃어? 울어?·169
제4부 여유로움(composure)
여유·175
돌죽·180
겸허(謙虛)·184
경로우대(輕老愚待)·187
청(聽)·191
책임(責任)·195
인내(忍耐)·200
피그시·204
언어·207
놀자·211
도(道)와 로(路)·216
을미 세모(乙未 歲暮)에·220
주름살·223
축하의 글·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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