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김종수 형은 자칭타칭 데모꾼이다. 그의 인생역정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사실 그 말이 맞다. 198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공채1기로 입사해 그때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30년을 노동운동에 헌신해 왔다. 춘천민주노동자연합 위원장, 민주노총 강원본부장, 민주노총 총연맹 비상대책위원, 강원민중연대 상임대표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민주노총 강원본부 지도위원으로 있다. 그런 형이 어느 날 찾아왔다. “제영아, 나 시집 내고 싶다.” 이 무슨 자다가 봉창을 두드리는 소리던가. 속으로 정말 그랬다. 겉으로는 “에이, 농담이지? 그럼 일단 원고를 좀 보여줘.” 건성으로 답을 한 건데, 정말로 원고를 보내왔다. 노동운동하면서 지금까지 틈틈이 썼다는 시편들, 120여 편에 달하는 원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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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수 형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소위 모범생이고 우등생이었다. 그리고 문예부 활동을 열정적으로 했던 문학청년이기도 했다. 이런 얘기를 언젠가 들었던 기억은 있지만, 가끔 신문에 실린 형의 산문을 읽었던 기억은 있지만, 그가 시를 썼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없고, 그의 시를 본 적도 없다. 등단한 이력은커녕 시골 백일장 수상 경력도 없는, 그런 형이 시집을 내겠다고 보내온 원고를 보면서,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조금씩 내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섣부른 판단이었다. 형의 시편들은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아직은 원석에 가깝지만, 상투적인 표현이나 불필요한 수사도 없지 않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진정성이 있었다. 거칠지만 거칠어서 오히려 말의 생기가 도드라졌다. 형에게 전화를 넣었다. “형, 시집 냅시다! 모험 한번 해봅시다!” 그렇게 김종수 형의 첫 시집 『엄니와 데모꾼』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고분고분하지 말고 일부러라도 틱틱거려야
데모꾼 자식 둔 엄니들은 가끔 그게 익숙할 때가 있어야
그래야 아이구 저늠 승깔 하곤 딱 지애비 닮아서리
하믄서 먼저 죽은 남편 생각하는 거라야
헌디 이늠아 제발 이늠아 넘 앞장서다 다치지 말구 중간만 해라잉 그라시지
그라믄 아구 아구 알았다닝께 또 그라시네 허지
참 그 소리 들을 날도 얼마 안 남았제
그케 생각하믄 눈물 나야
- 「엄니와 데모꾼」 전문
3
『엄니와 데모꾼』은 평생을 노동운동에 바친 해직 노동자가의 첫 시집이며 일생을 담아낸 자서전이다. 한 사내가 온몸을 끄-을-고 고난의 한 생을 기어이 살아낸 흔적이다. 그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가족에 대한 사랑, 약자와 소외된 자들에 대한 연민, 유년 시절의 꿈 등 뜻밖의 흔적들도 곳곳에 보이는데, 그러한 흔적들이 오히려 그가 왜 평생 노동운동을 해야 했는지, 그가 왜 노동운동이라는 투쟁의 한 복판에서 시를 써야 했는지, 알려주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매운 김치볶음밥이 먹고 싶어
이른 저녁 한 끼 때우고
나른해질 즈음 화투패를 보던
이월 매화, 구월 국화, 오월 난초
임도 보고 술도 먹고 뽕도 따겠네
횡재수라며 환해지던
어스름 녘 세 평 대기실
삶이 나를 속여 슬픈 게 아니라
내가 삶을 속여 노여운 거라고
낡은 액자 속 푸시킨의 넋두리가
기운 배처럼 출렁이던
어스름 녘 세 평 대기실
청춘의 한때가 저물거나 다시 피거나
그때 그 꽃들 붉게 번지는
어스름 저녁이 있다
- 「화花」 전문
그가 대학을 포기하고 거리를 방황하던 젊은 시절, 니나노 집 아가씨들의 어느 날의 풍경을 그린 시가 바로 「화花」다. 소위 건달 노릇을 하던 시절에도 그의 시선은 이미 시인이었던 것. 다만 한 가지 비록 이 시집을 통해 김종수 형이 시인으로서 첫 발을 내딛는 것이긴 하지만, 아직은 많은 부분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여느 시인들에 비해 그 시작이 늦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더 절실하게 절차탁마(切磋琢磨)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 소개
저 : 김종수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한동안 길거리를 떠돌며 방황의 시절을 보냈다. 이후 일본산 오락기 원판을 수입하여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친구와 함께 오락기 해적판을 만드는 사업을 하였으나 그만두고, 1988년 국민건강보험공단 공채1기로 입사해 그때부터 노동운동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왔다. 춘천민주노동자연합 위원장, 민주노총 강원본부장, 민주노총 총연맹 비상대책위원, 강원민중연대 상임대표 등을 역임하고 현재는 민주노총 강원본부 지도위원, 주간신문 춘천사람들 이사 겸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목 차
시인의 말
1부. 하얀 나비
춘천 - 대바지강
엄마
지난 이야기
바람은 쐬는 것
번개팅
인생이란
파리들의 수난
가을
측은지심惻隱之心
똥 눌 때
논리
척
명절 테러범
화花
모난 돌
하얀 나비
나목裸木
2부. 속물
빼먹은 대가
다시 피는 꽃
다시 한 번 묻고 싶어도
미안해
사랑과 이별
딸에게
민달팽이
염색
좋아한다는 건
누룽지를 먹으며
속물
날개를 접는다는 것
섞여야 예쁘다
벽
갈 수밖에
비 오는 날 - 춘천아트마켓
불량 셀러 - 춘천아트마켓
3부. 엄니와 데모꾼
엄니와 데모꾼
시민혁명
바보들의 이야기
채송화 혁명
노동자
관계
대답
부서진다는 것
영금정에서
회사 택시
마르크스의 유언
가려움증
촛불
자유가 뭐냐고?
저항에 대하여
왕년에
넋두리 변증법
4부. 혁명의 징조
파업 소풍
철근 노동자 - 고故 이철복 동지
청량리 혁명광장
투쟁밥 - 6 ? 3 삼척 동양시멘트 투쟁
인사청문회
불쌍해서 어떡해
불꽃처럼 살다 바람처럼 간*
혁명전야
파도는 연인이다
뻰찌
연꽃 혁명
소소한 이야기
고故 백남기 어르신 분향소
조까튼 국가
정치는 왜, 어떻게 죽었나
선돌을 바라보며
혁명의 징조
발문. ‘엄니와 데모꾼’에 부쳐 - 친구 종수에게
정현우 (화가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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