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오른편으로 기우는 몸의 중심을 늘 왼편이 잡아주었다
월 몇만 원이 기아에 허덕이는 생명을 구한다는 공익광
고를 볼 때마다 나는 저절로 TV 앞에서 왼편으로 몸이 기
울었다 마음이 왼편에 있는 줄 알았다 우회로를 돌 때마
다 한쪽으로 쏠리는 몸을 바로 잡아주던 왼편의 배후가
궁금했다
견딘다는 것은 왼편에 몸을 기댄다는 것,
목련꽃이 왼편으로 기울고 동백꽃 왼편이 더 붉은 것도
봄의 심장이 왼편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전문
우리가 가진 열망의 중심부는 ‘오른쪽’이다. 대부분 왼손보다는 ‘오른손’에 익숙해 있어 ‘오른쪽’은 ‘왼쪽’보다 더 많은 무게를 지닌다. 지금의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 뒤돌아보는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는 자신을 둘러싼 온갖 일과 그 현실 속에 공존하는 무수한 타인들이 등장한다. 지구라는 행성에 함께 살면서도 빈곤으로 끊임없이 고통 받는 저편의 나라, 마지막 극점에 서 있는 공존이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 TV로 제시되고 연민과 동정으로 파생된 시인의 감정은 왼쪽으로 기울어간다. 왼편에 있는 심장(心臟)이 배후이다. 생명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 심장은 혈액을 온몸에 흐르게 하는 인체의 엔진이다. 타인의 불행 앞에 동요하지 않는 무감각한 양심들, 그저 습관처럼 채널을 돌려버리는 차가운 심장들, 척박한 환경이 주는 결핍과 불신들, 메마른 현실에 노출된 우리는 타인의 고통 앞에 오른쪽인가, 왼쪽인가? 시인은 이러한 질문에 찬반논리를 펴지 않고 “견딘다는 것은 왼편에 몸을 기대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누군가는 기대고 누군가는 받아주어 세상은 돌아간다. “봄의 심장”도 왼편에 있어 겨울을 밀어내고 봄이 오는 것이다. 송문희 시인은 몸 밖에 있는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몸 안으로 끌어들여 ‘왼쪽’으로 기울고 있다.
방 하나에 세든
도편수가 꿈이라는 목수 총각
두어 달씩 방을 비우면 누구나
두 평의 황홀한 자유를 누리며
슬그머니 그 방에서 책을 읽고, 술을 마셨다
세상 막다른 골목에서 자라난
음지들이 바깥으로 발을 뻗어나갔다가
시간을 되짚어 찾아오면
오래된 골목은
속주머니에 숨겨둔 풍경을 꺼내놓는다
-「흑백의 골목」 부분
「흑백의 골목」은 적당히 거리를 두거나 적당히 타협하고 불리하면 외면하는 현대인이 살아가는 방식과 대조를 이루고 있다. 속주머니에 숨겨둔 오래된 풍경을 꺼내놓는 골목은 지상 어느 곳에 존재하고 있을까. 자신만의 목소리로 독자와 소통을 시도하는 송문희 시인은 박제된 기억을 흔들어 깨워 현재로 걸어 나오게 한다.
시인의 말
텃밭에서
배추와 무를 다듬었다.
벌레 먹고 빛바랜 낱장 한 소쿠리
정성껏 다듬어
말리고 삶아 소박한 밥상이 되었다.
겨우 허기를 면했다.
2017년 가을
송문희
작가 소개
저 : 송문희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계간《시와비평》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충북제천시청, 부산 사하구청 평생교육사를 역임했다. 2017년 경남문화예술진흥원 창작기금을 수혜했다.
목 차
제1부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 13
한 끼의 밥 14
행복의 온도 16
귀무덤 18
도시의 누 떼 19
희망을 시위하다 20
조우 22
어떤 주문 24
마법의 도시 26
첫 통증 28
여우별을 보았다 30
나래기 32
흑백의 골목 34
적색몸돌의 사유 36
제2부
개똥참외 39
무던이 40
청려장 41
손꾸락 경전 42
파랑주의보 44
동백꽃 여인숙 46
졸년월일 47
저녁을 완성하다 48
단단한 그늘 50
부석사 52
외도에서 53
의림지 54
열무장수 56
천 원의 경지 58
제3부
분수 61
붉은 집 62
꽃몸살 64
촛불 66
그 저녁 67
위양지의 봄 68
꽃 전대 70
무언의 절창 72
제부도 73
손수레를 밀다 74
영남루 야경 76
호박잎 78
빈틈으로 건너가다 79
바람의 거취 80
제4부
소주병 83
개다리소반에 관한 기억 84
대설주의보 86
엄마의 바다 88
버킷리스트 89
하구에서 90
촌놈정신 92
웃는 얼굴 93
날개 94
회혼례 96
시든 꽃 98
만어사 99
천사의 나팔 100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102
문해교실 풍경 104
해설 | 감각을 채집하고 관계를 작동시키다 105
마경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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